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지금까지 국내의 탄소 배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기업들도 기후위기 대응을 자신들이 선도한다고 합니다.이제 시민도 기업도, 정부도 모두 기후위기를 외칩니다.
이렇게 모두가 나서 기후위기를 해결하자고 하는데 기후위기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기후위기를 막자고 외치지만, 우리의 안전한 일상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막대한 탄소 배출로 자본을 늘리고, 더 많은 자본을 벌어들이기 위해 구조를 유지한 것이 그 원인입니다. 지구 온도를 상승시킨 온실가스의 절반 이상이 지난 20년간 배출되었습니다. 국내 온실가스의 64%를 상위 11개 기업에서 배출합니다. 기후위기를 유발한 사회는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불평등과 착취의 구조를 더 견고히 만들어왔습니다.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그런 기업에 여지를 주고는 현실성을 들먹입니다. 지금의 체제로는 위기를 막을 수도, 안전한 일상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 현실인데 얼마나 더 현실적이어야 할까요.
2020년 3월 13일 청소년기후행동은 대통령과 국회에 한국의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에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후위기를 막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상의 생명권, 평등권, 환경권,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 등을 모두 침해한다는 것을 이유로 기후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신이라는 듯 2020년 10월 한국 정부는 기후위기를 막고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줘야 한다며 탄소중립을 대대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같은 시기 헌법재판소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의 헌법소원에 대한 대통령 의견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정부는 해당 의견서를 통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직접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 소송의 원고인 청소년 19명은 소송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며 ‘기후위기의 당사자라는 건 이들이 아닌 철강 산업 등일 것’이라며 ‘탄소를 배출해오던 기업이 기후위기로 인해 탄소를 배출하지 못하게 되니 이들이 피해 당사자다'라는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정부는 이미 필요 최소한의 조치를 다 했다'는 말을 더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이 재난이 되어 닥칠 때도 비슷합니다. ‘취약계층',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만 집중하며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따지지 않습니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핑계를 대면 그만이니까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책임에는 피해에 대한 보상만을 언급해왔습니다. 재난으로부터 불운한 개인을 구제하는 것처럼요. 다수의 국민에게는 개인적 실천을 함께 해달라고 말해왔습니다. 정부의 책임과 과오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은 채 이것이 최선이라고 합니다. 전부 국가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구조적 문제를 지우기 위해 사용한 방법입니다. 정치는 기후위기 대응에 의도적으로 실패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만 기후재난을 몇 번 목격했는지 모릅니다. 전 세계를 덮친 가뭄. 유난히 긴 폭염. 그리고 장마와 태풍. 인류 역사상 최대치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겪으며 우리는 오늘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습니다.
사실 정부가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기후대응 예산 삭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축소, 화석연료와 원전의 퇴출을 유보하는 결정이 불과 반년 만에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 3월 25일 광화문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 말고는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사회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행동하십시오.
1. 2030 NDC 70%(217mtCO2 수준)로 상향해야 합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7년 대비 70% 이상으로 상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막느냐 막지 못하느냐의 지표를 IPCC 1.5도 특별보고서에 기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0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목표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보고서는 모두가 똑같이 절반의 수치를 줄여야 한다고 해야 할 뿐, 과거와 현재의 배출 책임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 해결에는 동의하지만 국가 간 배출 책임과 감축할 역량이 모두 공평한 건 아닙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목표는 결코 공정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까지 배출해 온 배출 책임과 각 역량을 고려해 공정한 분담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합니다. 이건 나만 잘하면 살아남는 경쟁이 아니라 누구 하나라도 잠수타면 점수가 깎이는 지옥의 조별 과제라는 걸.
우리나라는 감축의 역량과 배출 책임을 고려하여 2017년 대비 70%, 2억 톤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현재 상황은 우리나라처럼 온실가스를 감축할 역량이 있는 나라들이 나서지 않으면 모두가 침몰하는 개미지옥입니다. 공정보다는 우리의 무사 생존을 위한 목표인 것입니다.
2.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새로운 논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실패한 옛날 정책을 꺼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배우는 생물이기도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생물이기도 합니다. 많은 실수를 반복했으니 이제는 좀 배울 차례입니다.
2030년까지 탈석탄를 해야 합니다. 더 늦으면 답이 없습니다. 배출되는 탄소와 좌초자산을 감당할 역량이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2030년 탈석탄을 위해 지금부터 발 빠른 전환이 필요합니다.
화석연료의 대안은 화석연료가 아닙니다. 탈석탄했다고 해서 가스가 괜찮은 건 아닙니다.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니 괜찮다는 안일함이 우리를 기후위기 시대까지 내몰았습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1명의 전문가가 아니라 100명의 당사자입니다. 100명의 이야기를 들을 자신이 없어 1명의 전문가를 선택하는 사람은 다수를 대변하는 정치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전문성이 아닌 당사자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논의 테이블을 통해 새롭게 감축 과정을 설계해야 합니다.
3. 모두가 안전할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이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적응하고 어떻게 재난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차고 넘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폭염과 폭우, 가뭄, 태풍, 한파 등의 재해가 찾아올 것입니다. 직접적인 자연재해부터 생태계 변동으로 인한 식량과 식수의 부족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위협합니다.
이로부터 모두가 안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공공 서비스를 강화해야 합니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보편적 복지의 영역을 확대하고 공공의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민영화는 기후위기의 최대 적입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공기업의 적자가 아니라 우리의 세금을 수익 사업으로 이용하는 사회입니다.
우리의 위기는 지금 당장의 위기입니다. 사회 안전망과 공공 서비스는 위기가 닥치기 전, 발 빠르게 나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 허황된 목표일지 모르지만, 이 허황된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희생해 살아남는 방식은 결국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게 만드니까요.
우리 모두 위기를 압니다. 위기를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언제든지 문을 두드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직 기회라고 부를 시간이 남아있을 때 움직이세요. 기후위기는 기회라고 부를 만큼, 나중으로 미룰 만큼 만만하지 않습니다.
2022년 9월 23일 글로벌 기후파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