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아카이브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의 당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난 기행레터를 모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를 구조적 문제로 바라봅니다. 이 레터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이 바라보는 그 ‘구조’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당시 기후위기 대응의 법적 의무를 촉구한 캠페인이 진행되었습니다. 레터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법적 영역에서 기후 대응을 촉구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1호 레터 전문 보기: https://gihang.stibee.com/p/53

구조적 문제에서 "구조"를 맡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 구조는 대체 뭘까요? 늘 하는 얘기지만 생각보다 추상적입니다. 오늘은 이 구조적 문제에서 구조에 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하는 행위의 대부분이 탄소를 배출합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인간 활동에서 탄소 배출이 동반된다는 건 탄소를 배출하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생활 반경을 넓혀주는 이동 수단, 노동력을 대신해 주는 기술 등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동력, 에너지를 시작으로 물품이나 서비스 제공 등 산업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죠. 탄소 배출량에 비례하는 이익을 누려왔지만, 이제는 탄소를 배출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남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해왔던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위협하는 제약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는 기후위기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책임을 부정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튼 것이죠.
탄소를 배출해 온 많은 산업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경제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담당해 왔기 때문에 사회에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은 마치 공익을 위한 것처럼 들리니까요. 경제 성장을 통해 몸집을 키운 기업들 덕분에 우리의 생활이 나아졌다. 우리 모두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이 책임을 기업에 돌리면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입장입니다. 당연하게도 말이 안 되는 주장입니다. 그들이 더 많은 배출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은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이런 주장을 통해 개인의 변화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기업이나 정부의 “어쩔 수 없다”라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변하겠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으니까 나만 살아남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망하자는데 개인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전기를 아껴봤자 발전소는 꺼지지 않습니다. 개인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탄소사회입니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구조의 단면이기도 하죠.
여기서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민영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재생에너지를 예로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현재 PPA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민간 거래가 가능합니다. 민간 발전소를 통한 자체적 전기 생산도 가능하고요. 그런데 이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재생에너지 시장을 활성화할 수는 있지만 기후위기 해결로 연결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구조의 변화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제도 완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자본에 자유를 보장하는 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일 뿐입니다. 현재 자본의 우위를 점한 주류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탄소배출을 통해 이익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세계 상위 10%가 온실가스의 절반 이상을 배출해왔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말한 구조, 혹은 시스템이란 건 공공의 것을 통해 사적 이익을 취해온 사람이 주도권을 잡은 사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공공의 것조차 개인이 소유하려고 하는 상황인 것이죠.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이런 사적 이익을 전부 공공의 것으로 되찾아 오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단지 과학적 현상으로만 이야기하며 환경문제로만 일축해 온 시간이 길어 여전히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는 낯설긴 합니다. 하지만 불평등으로 인해 기후위기가 만들어졌고 기후위기는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기후변화를 부정할 수 있었던 것도, 기후위기 앞에서 여전히 자신의 이익만 챙길 수 있는 것도 전부 다수를 압도할 수 있는 소수의 거대한 자본권력 덕분이니까요.
우리는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성의 영역을 확보하고 민영화된 영역을 재공영화해야 합니다.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꾼다고 해서 기후위기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현재 공공운수노조에서는 이런 민영화에 대처하기 위해 민영화 금지법을 위한 서명 운동을 진행 중입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많은 힘이 모이면 좋겠습니다.
헌법소원, 어디까지 왔나?
지난 9월 27일. 기후위기 대응의 법적 의무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이 각국 정부에게 보내졌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을 포함한 기후 소송을 목표로 결성된 프랑스의 비영리단체 ‘우리 모두의 일(Norte Affaire a Tous), 뉴질랜드의 ‘기후 행동을 위한 변호사들의 모임’, 독일의 ‘저먼워치’ 등 세계 각국에서 기후 소송을 진행 중인 전 세계 변호사 단체 및 시민사회 29곳에서 각국 정부에 보다 강력한 기후 대응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며 더 이상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습니다.
2020년 3월 13일. 한국에서 최초의 기후소송이 시작된 지 어느덧 2년 하고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2019년 우르헨다(Urgenda) 판결 이후 가속도가 붙어 한국에서는 헌법소원이 시작되었고 한국보다 한 달 빠르게 시작된 독일의 헌법소원은 2021년 3월 정부를 상대로 승소를 거두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시급성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판결의 결과가 무의미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 빠른 판결을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전 세계 변호사와 NGO가 함께 각국 정부에 더욱 강력한 기후 대응을 촉구하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후소송 연합체는 각국 정부에 기후 과학에서 말하는 바에 따라, COP27 전까지 보다 강력한 기후 목표를 제시하고 이행에 나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추가적인 법적 소송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80건 이상의 기후 소송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되었으며 수십 개국 법원에선 정부의 기후 대응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소원의 결과는 평균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기다림의 시간이 불규칙합니다.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10년. 그보다 더 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항상 들었습니다. 정말로 언제 판결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응답이 오지 않는 국회와 의견서를 끝으로 입을 닫은 정부의 시간 끌기에 어울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서한을 통해 전달한 것처럼 법은 우리의 편이며 각국의 대응이 지금처럼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면 우리는 계속해서 법원에 책임을 물을 것이니까요. 하루빨리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단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메시지 아카이브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의 당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난 기행레터를 모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를 구조적 문제로 바라봅니다. 이 레터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이 바라보는 그 ‘구조’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당시 기후위기 대응의 법적 의무를 촉구한 캠페인이 진행되었습니다. 레터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법적 영역에서 기후 대응을 촉구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1호 레터 전문 보기: https://gihang.stibee.com/p/53
구조적 문제에서 "구조"를 맡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 구조는 대체 뭘까요? 늘 하는 얘기지만 생각보다 추상적입니다. 오늘은 이 구조적 문제에서 구조에 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하는 행위의 대부분이 탄소를 배출합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인간 활동에서 탄소 배출이 동반된다는 건 탄소를 배출하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생활 반경을 넓혀주는 이동 수단, 노동력을 대신해 주는 기술 등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동력, 에너지를 시작으로 물품이나 서비스 제공 등 산업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죠. 탄소 배출량에 비례하는 이익을 누려왔지만, 이제는 탄소를 배출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남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해왔던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위협하는 제약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는 기후위기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책임을 부정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튼 것이죠.
탄소를 배출해 온 많은 산업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경제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담당해 왔기 때문에 사회에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은 마치 공익을 위한 것처럼 들리니까요. 경제 성장을 통해 몸집을 키운 기업들 덕분에 우리의 생활이 나아졌다. 우리 모두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이 책임을 기업에 돌리면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입장입니다. 당연하게도 말이 안 되는 주장입니다. 그들이 더 많은 배출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은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이런 주장을 통해 개인의 변화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기업이나 정부의 “어쩔 수 없다”라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변하겠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으니까 나만 살아남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망하자는데 개인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전기를 아껴봤자 발전소는 꺼지지 않습니다. 개인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탄소사회입니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구조의 단면이기도 하죠.
여기서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민영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재생에너지를 예로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현재 PPA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민간 거래가 가능합니다. 민간 발전소를 통한 자체적 전기 생산도 가능하고요. 그런데 이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재생에너지 시장을 활성화할 수는 있지만 기후위기 해결로 연결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구조의 변화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제도 완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자본에 자유를 보장하는 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일 뿐입니다. 현재 자본의 우위를 점한 주류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탄소배출을 통해 이익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세계 상위 10%가 온실가스의 절반 이상을 배출해왔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말한 구조, 혹은 시스템이란 건 공공의 것을 통해 사적 이익을 취해온 사람이 주도권을 잡은 사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공공의 것조차 개인이 소유하려고 하는 상황인 것이죠.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이런 사적 이익을 전부 공공의 것으로 되찾아 오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단지 과학적 현상으로만 이야기하며 환경문제로만 일축해 온 시간이 길어 여전히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는 낯설긴 합니다. 하지만 불평등으로 인해 기후위기가 만들어졌고 기후위기는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기후변화를 부정할 수 있었던 것도, 기후위기 앞에서 여전히 자신의 이익만 챙길 수 있는 것도 전부 다수를 압도할 수 있는 소수의 거대한 자본권력 덕분이니까요.
우리는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성의 영역을 확보하고 민영화된 영역을 재공영화해야 합니다.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꾼다고 해서 기후위기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현재 공공운수노조에서는 이런 민영화에 대처하기 위해 민영화 금지법을 위한 서명 운동을 진행 중입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많은 힘이 모이면 좋겠습니다.
헌법소원, 어디까지 왔나?
지난 9월 27일. 기후위기 대응의 법적 의무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이 각국 정부에게 보내졌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을 포함한 기후 소송을 목표로 결성된 프랑스의 비영리단체 ‘우리 모두의 일(Norte Affaire a Tous), 뉴질랜드의 ‘기후 행동을 위한 변호사들의 모임’, 독일의 ‘저먼워치’ 등 세계 각국에서 기후 소송을 진행 중인 전 세계 변호사 단체 및 시민사회 29곳에서 각국 정부에 보다 강력한 기후 대응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며 더 이상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습니다.
2020년 3월 13일. 한국에서 최초의 기후소송이 시작된 지 어느덧 2년 하고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2019년 우르헨다(Urgenda) 판결 이후 가속도가 붙어 한국에서는 헌법소원이 시작되었고 한국보다 한 달 빠르게 시작된 독일의 헌법소원은 2021년 3월 정부를 상대로 승소를 거두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시급성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판결의 결과가 무의미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 빠른 판결을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전 세계 변호사와 NGO가 함께 각국 정부에 더욱 강력한 기후 대응을 촉구하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후소송 연합체는 각국 정부에 기후 과학에서 말하는 바에 따라, COP27 전까지 보다 강력한 기후 목표를 제시하고 이행에 나설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추가적인 법적 소송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80건 이상의 기후 소송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되었으며 수십 개국 법원에선 정부의 기후 대응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소원의 결과는 평균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기다림의 시간이 불규칙합니다.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10년. 그보다 더 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항상 들었습니다. 정말로 언제 판결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응답이 오지 않는 국회와 의견서를 끝으로 입을 닫은 정부의 시간 끌기에 어울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서한을 통해 전달한 것처럼 법은 우리의 편이며 각국의 대응이 지금처럼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면 우리는 계속해서 법원에 책임을 물을 것이니까요. 하루빨리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단이 나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