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아카이브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의 당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난 기행레터를 모았습니다. 이 글은 2022년 923 기후파업을 준비하며 청기행이 바라보는 당사자성을 활동가의 관점에서 풀어낸 글입니다.
*45호 레터 전문 보기: https://gihang.stibee.com/p/47

포카의 읍소문
안녕하세요, 포카입니다. 레터를 만들고 있고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보이는 메시지, 그림이나 글 같은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할 이야기에 개인적인 영역이 포함되어 있어 청기행의 이름 대신 포카라는 이름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읽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선물할 수도 있겠지만 923을 준비하며, 그리고 기후운동을 하며 적지 않은 시간동안 고민해 왔던 부분을 조금씩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저는 청기행의 활동가가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기후운동가라고 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시위 현장이 있으면 피해 가고 캠페인은 노룩패스하고 비장하고 절박해 보일수록 뒷걸음질 칩니다. 좋은 일이라는 당위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지만 설득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청기행 활동을 할 때는 제가 느끼는 불편함의 지점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절박함을 드러내지 않고 가벼운 이야기만 하려는 게 아니라 무작정 외치고 화내는 것을 버리고 근거와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이게 옳은 일이니까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라는 강요가 아니라 왜 불특정 다수가,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해줬으면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기후위기가 모두의 일이라고 하는 이유, 지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나 개인을 챙기기 위해 행동합니다.
제 방식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온전히 모든 당사자를 대변하는 기후정의 운동을 만들 줄은 모르니까요. 기후행동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사회 전반의 변화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스펙트럼을 넓혀갔습니다. 다른 운동을 만드는 단위와 연대하여 기후위기 해결을 외치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당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합니다. 청기행이 당사자를 피해의 대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주장일 뿐 모든 운동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더욱이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 건 불가능해 보이죠. 기후행동을 하면서 마주하는 많은 메시지는 피해 당사자, 최전선의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우리가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듯이 그들의 불행을 소비했습니다.
청소년으로서, 미래세대로서, “우리 아이들”로서 소비해 온 운동의 방식을 경험한 청기행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전선의 당사자와 연대하는 방식이 그들의 불행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목소리 내는 주체성에 있다고 믿었던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운동권의 사람들에게 연대와 발언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의 피해가 기후위기 때문에, 그리고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연대하고 싸울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기후위기와의 교차성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다. 주거의 문제다. 노동의 문제다. 기후위기는 미래세대의 문제다. 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도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운동을 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의 문제에 함께 해달라고 주장했습니다. 참 바보 같은 일입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전환을 외치면서 다른 운동을 배제하는 위험을 만들어낸다니. 모순적이었습니다.
나를 대변하는 것은 내가 된다. 우리는 주체성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내 위기가 타인에 의해 대변되기 이전에 나 스스로 나의 위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전환. 기후정의. 다 모르겠습니다. 말만 좋지 사실 누구도 명확한 상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걸 구체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체 왜요? 기후위기는 시급하다면서 왜 해결책은 시급하지 않을까요? 많은 합의가 필요하니까?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 그럼 더욱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래 걸린다면서요. 빨리 시작이라도 해봅시다.
청기행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만으로도 우리의 위기는 확정입니다. 더 최악을 막기 위해 배출을 줄이고 위기에 대비하는 게 우리의 해결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의 설계를 요구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정의로운 전환이 되는 것이겠죠.
기후운동을 하는 우리가 말하는 해결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운동을 하는 여러분의 해결방식이 궁금합니다. 제도의 개선, 법 제정, 예산 지원 말고도 개념의 재정의나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겠죠. 빈약한 제 상상력으로는 이게 한계입니다. 어떤 요구를 하고 있고, 무엇이 문제이며, 왜 변화가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세요. 분명 그 안에 기후위기도 있을 겁니다. 찾아내서 연결하는 건 기후운동이라는 이름을 단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의 운동이 기후위기의 해결에 닿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문답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기후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923에서 외치는 메시지가 다른 운동을 배제하지 않도록. 무작정 기후정의가 절대적 정의라고 당위만을 외치지 않겠습니다. 설득의 기회를 내어주세요.
메시지 아카이브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의 당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난 기행레터를 모았습니다. 이 글은 2022년 923 기후파업을 준비하며 청기행이 바라보는 당사자성을 활동가의 관점에서 풀어낸 글입니다.
*45호 레터 전문 보기: https://gihang.stibee.com/p/47
포카의 읍소문
안녕하세요, 포카입니다. 레터를 만들고 있고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보이는 메시지, 그림이나 글 같은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할 이야기에 개인적인 영역이 포함되어 있어 청기행의 이름 대신 포카라는 이름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읽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선물할 수도 있겠지만 923을 준비하며, 그리고 기후운동을 하며 적지 않은 시간동안 고민해 왔던 부분을 조금씩 풀어가 보려고 합니다.
저는 청기행의 활동가가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기후운동가라고 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시위 현장이 있으면 피해 가고 캠페인은 노룩패스하고 비장하고 절박해 보일수록 뒷걸음질 칩니다. 좋은 일이라는 당위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지만 설득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청기행 활동을 할 때는 제가 느끼는 불편함의 지점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절박함을 드러내지 않고 가벼운 이야기만 하려는 게 아니라 무작정 외치고 화내는 것을 버리고 근거와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이게 옳은 일이니까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라는 강요가 아니라 왜 불특정 다수가,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해줬으면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기후위기가 모두의 일이라고 하는 이유, 지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나 개인을 챙기기 위해 행동합니다.
제 방식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온전히 모든 당사자를 대변하는 기후정의 운동을 만들 줄은 모르니까요. 기후행동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사회 전반의 변화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스펙트럼을 넓혀갔습니다. 다른 운동을 만드는 단위와 연대하여 기후위기 해결을 외치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당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합니다. 청기행이 당사자를 피해의 대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주장일 뿐 모든 운동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더욱이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 건 불가능해 보이죠. 기후행동을 하면서 마주하는 많은 메시지는 피해 당사자, 최전선의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우리가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듯이 그들의 불행을 소비했습니다.
청소년으로서, 미래세대로서, “우리 아이들”로서 소비해 온 운동의 방식을 경험한 청기행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전선의 당사자와 연대하는 방식이 그들의 불행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목소리 내는 주체성에 있다고 믿었던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운동권의 사람들에게 연대와 발언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의 피해가 기후위기 때문에, 그리고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연대하고 싸울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기후위기와의 교차성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다. 주거의 문제다. 노동의 문제다. 기후위기는 미래세대의 문제다. 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도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운동을 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의 문제에 함께 해달라고 주장했습니다. 참 바보 같은 일입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전환을 외치면서 다른 운동을 배제하는 위험을 만들어낸다니. 모순적이었습니다.
나를 대변하는 것은 내가 된다. 우리는 주체성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내 위기가 타인에 의해 대변되기 이전에 나 스스로 나의 위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전환. 기후정의. 다 모르겠습니다. 말만 좋지 사실 누구도 명확한 상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걸 구체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체 왜요? 기후위기는 시급하다면서 왜 해결책은 시급하지 않을까요? 많은 합의가 필요하니까?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 그럼 더욱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래 걸린다면서요. 빨리 시작이라도 해봅시다.
청기행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만으로도 우리의 위기는 확정입니다. 더 최악을 막기 위해 배출을 줄이고 위기에 대비하는 게 우리의 해결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의 설계를 요구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정의로운 전환이 되는 것이겠죠.
기후운동을 하는 우리가 말하는 해결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운동을 하는 여러분의 해결방식이 궁금합니다. 제도의 개선, 법 제정, 예산 지원 말고도 개념의 재정의나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겠죠. 빈약한 제 상상력으로는 이게 한계입니다. 어떤 요구를 하고 있고, 무엇이 문제이며, 왜 변화가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세요. 분명 그 안에 기후위기도 있을 겁니다. 찾아내서 연결하는 건 기후운동이라는 이름을 단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의 운동이 기후위기의 해결에 닿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문답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기후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923에서 외치는 메시지가 다른 운동을 배제하지 않도록. 무작정 기후정의가 절대적 정의라고 당위만을 외치지 않겠습니다. 설득의 기회를 내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