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9일 개정교육과정의 시안이 공개되었습니다. <교육기본법> 개정에 따라 생태전환교육을 받도록 명시되었지만 교육 과정에는 빠져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국회 긴급 토론회에 청소년기후행동도 참여했습니다.

[토론문] 기후위기를 의도적 배제한 교육 총론 시안은 우리의 삶을 지웠다.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의 시안은 기후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현재 시안이 실제 교과 과정으로 편성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면 의도적으로 위기와 당사자의 삶은 지운, 실패한 교육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교육 과정 총론은 교과 과정의 대전제를 잡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교육에서 기후위기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건 단지 환경과 생태의 언급을 늘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재 시안은 디지털 인재 양성 비전에 맞추어 생태, 환경, 기후를 삭제한 시안입니다. 총론 시안은 의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해 온 국가의 무책임한 수준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사회 변화와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뿐더러, 다양한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19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변화를 만들고 있는 당사자 단체입니다. 2019년 5월을 시작으로 기후위기와 교육을 함께 이야기하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교육 영역에서의 대전환과 기후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환경교육, 생태전환교육 등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사실상 청기행과 청소년들에게 그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바란 기후교육은 지금까지의 교육 과정에서 생태나 환경이 다루어지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배워 온 교육과 현실의 기후위기가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에 단지 생태, 환경을 언급하는 교육만으로도 기후위기 해결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환경 문제로만 구분 짓는 교과 방식으로도 지금의 기후위기를 이해하기에 매우 부족합니다.
기후위기를 그냥 환경 문제로 배우고 하나의 교과로 더 추가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과학적 현상도 생태계와 자연의 지속가능성도 그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공존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인성 함양보다 앞서 기후위기를 야기한 시스템의 구조를 이해하고 정확한 문제를 진단해야 합니다. 기후위기가 단순히 인류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식의 성장 논리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기후변화는 어쩔 수 없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기후위기는 특정 집단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키워온 욕심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는 한 번도 우선순위가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위기가 존재하는데도 여전히 기후위기가 우선순위라는 것에 정책결정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후위기 시대라고 모두가 말하는데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전히 기후위기가 환경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환경은 중요하지만 인류의 발전 앞에서 늘 희생되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지만 경제성장의 발판이 되어야 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정책 결정자와 전문가의 주장이 정의고 진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기후위기가 환경 문제로만 한정되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이 우선순위를 반전시킬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는 일상의 위기입니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위협합니다. 극단적인 날씨, 식량 부족, 물 부족, 자연재해, 질병. 이를 통해 양극화될 세대 간, 지역 간, 소득 간의 불평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미래를 뒤흔듭니다. 지금 이대로면 에너지 시스템은 불안정해지며 공공 서비스는 계속 축소될 겁니다. 공공의 영역이 줄어든다는 건 앞서 말한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며 결국 사회 안전망 붕괴로 이어집니다. 기후위기는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할수록 많은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탄소사회에서 자본과 권력의 보호 아래 성장했습니다. 환경이나 생태교육으로 한정해서는 결코 기후위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정부는 지금의 시스템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기업은 탄소를 배출하며 얻은 이익을 놓지 않기 위해 그린워싱에 진화를 거듭합니다. 기후위기는 이념을 넘어선 인류의 위기 따위가 아닙니다. 정치적 이념과 자본권력이 버무려진 위기입니다.
기후위기의 해결 방식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지구를 아끼는 게 아닙니다. 탄소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전환의 새로운 상을 그리는 데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곳에서 정치를 배제하고 가장 근본을 파악해야 할 곳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배제한 것이 지금까지의 교육이었습니다. 기후위기 교육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해결책은 단지 사라진 글자 몇 자를 추가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인성 함양이나 환경 감수성 따위가 없어도 우리가 살아남아 일상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육청에 처음 찾아갔을 때 이미 학교에서 환경 교육은 하고 있고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충분히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듣자고 찾아갔을까요. 기후위기는 내가 신경 써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취미 같은 게 아닙니다. 선택과목으로 환경 감수성 높은 사람들이 들으라고 있는 과목도 아닙니다. 기후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후위기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고 사회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그 전환의 상을 그리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입니다. 이것은 관심 있는 학생 몇 명만 아는 게 아닌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학생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건 지금의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 바라는 학생의 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학생이 자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변화의 상을 그리도록 충분한 자원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 바란 건 그런 것이었습니다. 교육 과정 안에 담긴 교육의 목적보다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교육이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제대로 마주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문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질문을 던지게 만들며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경험하기를 바랐습니다. 어디에 분노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위기를 건널 수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모든 정보가 배제된 교육에서 배움을 포기한 것이 비단 우리만은 아닐 것입니다.
기후위기 교육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이 과정에 당사자는 배제되어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청소년은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청기행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기후교육의 목적은 청기행 같은 청소년 활동가를 키워내는 것이 아닌 누구나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변화와 적응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한 명의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누구도 인재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과 과정 안에서 기후교육의 내용을 양적, 질적 비중을 늘리거나 선택 과목 안에서 기후 교육으로 편성할 수 있는 등 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강조해서 편성되도록 해야 기후위기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위기 앞에서 구성원 각자가 개인의 전환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즉, 실제 위기를 마주하고 개인이 삶을 잘 유지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육의 역할은 단순히 생태에 대한 이해와 생태 감수성의 확대가 아니라 기후위기가 유발된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에 기초 두어 각자가 전환의 상을 그릴 수 있게 기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현재 위기의 구조를 이해하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시안은 이미 목적을 상실했고, 우리의 삶을 지워버렸습니다. 기후위기 앞 우리의 삶을 의도적으로 지우는 총론은 무의미합니다. 기후위기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개인이 위기 앞에 삶의 전환을 그릴 새로운 총론 구성이 시급합니다.
2022년 8월 29일 개정교육과정의 시안이 공개되었습니다. <교육기본법> 개정에 따라 생태전환교육을 받도록 명시되었지만 교육 과정에는 빠져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국회 긴급 토론회에 청소년기후행동도 참여했습니다.
[토론문] 기후위기를 의도적 배제한 교육 총론 시안은 우리의 삶을 지웠다.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의 시안은 기후를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현재 시안이 실제 교과 과정으로 편성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면 의도적으로 위기와 당사자의 삶은 지운, 실패한 교육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교육 과정 총론은 교과 과정의 대전제를 잡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교육에서 기후위기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건 단지 환경과 생태의 언급을 늘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재 시안은 디지털 인재 양성 비전에 맞추어 생태, 환경, 기후를 삭제한 시안입니다. 총론 시안은 의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해 온 국가의 무책임한 수준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사회 변화와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뿐더러, 다양한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19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변화를 만들고 있는 당사자 단체입니다. 2019년 5월을 시작으로 기후위기와 교육을 함께 이야기하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교육 영역에서의 대전환과 기후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환경교육, 생태전환교육 등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사실상 청기행과 청소년들에게 그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바란 기후교육은 지금까지의 교육 과정에서 생태나 환경이 다루어지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배워 온 교육과 현실의 기후위기가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에 단지 생태, 환경을 언급하는 교육만으로도 기후위기 해결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환경 문제로만 구분 짓는 교과 방식으로도 지금의 기후위기를 이해하기에 매우 부족합니다.
기후위기를 그냥 환경 문제로 배우고 하나의 교과로 더 추가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과학적 현상도 생태계와 자연의 지속가능성도 그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공존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인성 함양보다 앞서 기후위기를 야기한 시스템의 구조를 이해하고 정확한 문제를 진단해야 합니다. 기후위기가 단순히 인류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식의 성장 논리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기후변화는 어쩔 수 없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기후위기는 특정 집단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키워온 욕심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는 한 번도 우선순위가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위기가 존재하는데도 여전히 기후위기가 우선순위라는 것에 정책결정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후위기 시대라고 모두가 말하는데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전히 기후위기가 환경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환경은 중요하지만 인류의 발전 앞에서 늘 희생되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지만 경제성장의 발판이 되어야 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정책 결정자와 전문가의 주장이 정의고 진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기후위기가 환경 문제로만 한정되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이 우선순위를 반전시킬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는 일상의 위기입니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위협합니다. 극단적인 날씨, 식량 부족, 물 부족, 자연재해, 질병. 이를 통해 양극화될 세대 간, 지역 간, 소득 간의 불평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미래를 뒤흔듭니다. 지금 이대로면 에너지 시스템은 불안정해지며 공공 서비스는 계속 축소될 겁니다. 공공의 영역이 줄어든다는 건 앞서 말한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며 결국 사회 안전망 붕괴로 이어집니다. 기후위기는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할수록 많은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탄소사회에서 자본과 권력의 보호 아래 성장했습니다. 환경이나 생태교육으로 한정해서는 결코 기후위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정부는 지금의 시스템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기업은 탄소를 배출하며 얻은 이익을 놓지 않기 위해 그린워싱에 진화를 거듭합니다. 기후위기는 이념을 넘어선 인류의 위기 따위가 아닙니다. 정치적 이념과 자본권력이 버무려진 위기입니다.
기후위기의 해결 방식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지구를 아끼는 게 아닙니다. 탄소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전환의 새로운 상을 그리는 데에 해결책이 있습니다.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곳에서 정치를 배제하고 가장 근본을 파악해야 할 곳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배제한 것이 지금까지의 교육이었습니다. 기후위기 교육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해결책은 단지 사라진 글자 몇 자를 추가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인성 함양이나 환경 감수성 따위가 없어도 우리가 살아남아 일상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육청에 처음 찾아갔을 때 이미 학교에서 환경 교육은 하고 있고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충분히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듣자고 찾아갔을까요. 기후위기는 내가 신경 써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취미 같은 게 아닙니다. 선택과목으로 환경 감수성 높은 사람들이 들으라고 있는 과목도 아닙니다. 기후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후위기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고 사회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그 전환의 상을 그리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입니다. 이것은 관심 있는 학생 몇 명만 아는 게 아닌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학생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건 지금의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 바라는 학생의 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학생이 자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변화의 상을 그리도록 충분한 자원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 바란 건 그런 것이었습니다. 교육 과정 안에 담긴 교육의 목적보다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교육이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제대로 마주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문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질문을 던지게 만들며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경험하기를 바랐습니다. 어디에 분노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위기를 건널 수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모든 정보가 배제된 교육에서 배움을 포기한 것이 비단 우리만은 아닐 것입니다.
기후위기 교육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이 과정에 당사자는 배제되어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청소년은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청기행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기후교육의 목적은 청기행 같은 청소년 활동가를 키워내는 것이 아닌 누구나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변화와 적응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한 명의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누구도 인재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과 과정 안에서 기후교육의 내용을 양적, 질적 비중을 늘리거나 선택 과목 안에서 기후 교육으로 편성할 수 있는 등 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강조해서 편성되도록 해야 기후위기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위기 앞에서 구성원 각자가 개인의 전환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즉, 실제 위기를 마주하고 개인이 삶을 잘 유지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육의 역할은 단순히 생태에 대한 이해와 생태 감수성의 확대가 아니라 기후위기가 유발된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에 기초 두어 각자가 전환의 상을 그릴 수 있게 기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현재 위기의 구조를 이해하고 미래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시안은 이미 목적을 상실했고, 우리의 삶을 지워버렸습니다. 기후위기 앞 우리의 삶을 의도적으로 지우는 총론은 무의미합니다. 기후위기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개인이 위기 앞에 삶의 전환을 그릴 새로운 총론 구성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