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헌법소원][성명서] 1.5℃를 넘는다고 책임까지 넘길 수는 없다 - UNEP ‘Limiting Overshoot’ 보고서에 부쳐 (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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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1.5℃를 넘는다고 책임까지 넘길 수는 없다

-UNEP ‘Limiting Overshoot’ 보고서에 부쳐


2026년 9월 2일, 유엔환경계획(UNEP)은 ‘Limiting Overshoot’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사람의 활동으로 오른 지구 평균기온이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약 1.4℃ 높아졌고, 1.5℃를 넘어서는 시점이 향후 몇 년 안에 올 것으로 본다. 여기서 1.5℃는 어느 한 해나 어느 지역의 기온이 아니라, 산업화 이전을 대표하는 1850년부터 1900년까지의 평균과 비교해 전 세계의 기온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뜻한다. 세계기상기구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의 세계 평균기온이 5년 평균으로도 1.5℃를 넘을 가능성을 4분의 3으로 전망했다. 이는 장기적인 1.5℃ 초과가 이미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시점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1.5℃이하는  아무 피해도 없다는 안전선이 아니다. 이미 1.5℃에서도 사람과 생태계가 겪는 위험은 크다. 다만 온도가 더 오를수록 피해가 커지고, 돌이킬 수 없는 손실도 늘어나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한 기준으로 1.5℃를 세웠다. 이 보고서가 확인한 것은 1.5℃ 목표가 비현실적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필요한 감축을 미뤄온 결과, 더 위험하고 되돌리기 어려운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목표를 낮출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덜 넘고 얼마나 빨리 돌아오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다.


지난 8월 26일, 국회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헌법재판소가 '2031년 이후의 감축경로를 법에 두지 않은 것은 국민의 환경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후속 입법이었다. 국회는 2018년 배출량과 비교해 2035년에는 53~61%를 줄이도록 법에 적었고, 2040년과 2045년에는 각각 69~80%, 84~90%의 범위 안에서 나중에 대통령령으로 목표를 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배출권거래제 등 온실가스 배출을 실제로 규제하는 제도에는 각 범위에서 가장 적게 줄이는 하한(낮은 수준의 목표)을 적용하도록 했다.


국회가 기후대응의 책임을 뒤로 미루는 결정을 반복하는 동안, 같은 시기에 국제 과학은 그 미루기의 대가를 계산해 내놓았다. 우리는 1.5℃를 넘는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암울한 소식으로만 소비되고, 그에 따른 책임은 더 무거워지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더 나아가 이제 1.5℃는 지킬 수 없으니 목표를 ‘현실적인’ 다른 숫자로 바꾸자는 체념의 근거가 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1.5℃를 넘는다는 것은 목표가 지나쳤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감축을 제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5℃를 지키지 못한 다음 목표는 1.6℃인가. UNEP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초과가 예상된다고 해서 1.5℃ 목표를 포기하거나 더 높은 온도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제는 1.5℃를 아래에서 지키는 대신, 얼마나 높이 넘어갈지와 얼마나 오래 그 위에 머물지를 줄이고 다시 그 아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목표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길이 더 어렵고 길어졌다.


기후 대응을 미루는 시간과 온도 상승을 막거나 다시 되돌리는 시간은 같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처럼 많은 이산화탄소를 계속 배출하면, 5년이 지날 때마다 지구 기온이 도달할 최고점은 약 0.1℃씩 더 높아진다. 반대로 전 세계가 한 해에 새로 내보내는 양보다 100억 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빼내는 매우 낙관적인 상황에서도 온도는 10년에 약 0.05℃ 정도만 내려갈 수 있다. 현재 속도로 10년 동안 오른 온도를 되돌리는 데 약 50년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5년을 나중의 5년으로 갚을 수는 없다. 지금 결정을 미루면 나중에 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때는 그 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보고서가 보여주는 현실과 한국의 최근 상황은 따로 볼 수 없다. 이번 입법에는 시간과 누적의 계산이 보이지 않았다. 국회와 정부가 공개한 설명에서는 단순히 범위형으로 나중에 결정하는 기후대응을 하겠다는 내용들이 담겨있었따. 그러나 가장 많이 줄이는 경로와 가장 적게 줄이는 경로에서 앞으로 배출될 이산화탄소의 총량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그 차이가 위험을 얼마나 더 키우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산화탄소는 해마다 새로 배출되는 만큼 대기에 쌓이고, 그동안 쌓인 총량이 기온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감축목표를 정할 때에는 어느 한 해의 감축률만이 아니라, 그 경로를 따라 앞으로 얼마를 더 배출하게 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서는 상한과 하한이 각각 얼마의 배출을 남기는지, 1.5℃를 지키기 위해 세계가 앞으로 더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총량과 한국의 경로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 결과 폭염과 홍수, 건강과 노동, 주거와 식량, 국가와 지방정부의 재정에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


문제는 목표가 범위로 적혔다는 형식에만 있지 않다. 그 범위 안에서 언제, 무엇을 기준으로 더 많이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실제 규제는 가장 적게 줄이는 하한에 맞춰졌다. 가장 많이 줄이는 상한이 법에 함께 적혀 있어도,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만들 책임과 수단이 없다면 상한은 지켜야 할 목표가 아니라 선택할 수도 있는 숫자로 남는다. 산업이 지금 배출을 줄이며 감당해야 할 비용은 반복해서 판단의 조건으로 제시됐지만, 감축을 늦출 때 사람과 사회가 감당해야 할 위험은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았다. 계산하지 않았거나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삶에서는 피해로 나타나고, 그 비용은 정부와 사회가 뒤늦게 떠안게 된다.


감축목표는 산업이 지금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수준을 받아 적는 숫자가 아니다.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줄이고 대비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감축을 ‘기존 배출원을 얼마나 제약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보면 질문은 늘 “산업이 어디까지 이전의 방식을 할 수 없는가 (그래서 얼마나 부담감을 가져야하는가)”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에 닥칠 위험에서 출발하면 질문은 달라진다.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피해에 이르기 전에 무엇을 얼마나 빨리 줄여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적응을 감축이 실패한 뒤에 붙이는 대책으로 보지 않는다. 적응은 이미 닥쳤거나 피하기 어려워진 기후위험 속에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기본적인 기능을 지키는 일이다. 폭염과 홍수가 노동과 주거, 건강과 돌봄, 물과 식량, 에너지와 지역 기반시설에 어떤 위험을 만드는지 실제로 계산하기 시작하면, 감축은 산업을 얼마나 덜 제약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위험을 얼마나 빨리 줄일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적응을 제대로 생각할수록 감축을 늦출 수 없다는 결론에 가까워진다.


1.5℃를 넘는 세계에서도 우리의 삶은 이어져야 한다. 위험을 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위험을 닥쳐도 어느정도로 회복할 수 있는지는 소득, 사는 지역, 주거와 노동, 건강과 돌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는 기후위기 속 누군가는 위험 속에 남겨지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위험이 닥치기 전에 공공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UNEP 보고서도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복구에 정부의 돈과 인력이 몰리고, 장기적인 감축과 다음 위험을 막는 준비가 다시 밀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점에서 공공성과 사회안전망은 감축과 별개의 복지정책이 아니다. 감축이 실패했을 때 꺼내는 차선책도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는 동시에,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도 사회가 배출을 줄이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적인 기후정책이다. 사람을 보호할 공공의 능력이 무너지면 감축을 실행할 재정과 행정의 능력도 함께 약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산업은 산업의 여건을 이유로 미루고, 국회는 산업의 여건을 이유로 미루며, 정부는 국회가 정한 범위를 이유로 미룬다. 그렇게 아무도 책임지고 결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결국 사람들의 삶에 도착한다. 미루기의 끝에서 위험을 감당하는 것은 미루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아니다.


국회와 정부에 요구한다


첫째, 가장 낮은 수준의 감축 목표를 당연한 이행 경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법에 범위가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한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충분히 보호하는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행령과 국가기본계획,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와 배출권거래제를 설계할 때 하한을 자동으로 적용하지 말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감축수준을 다시 판단하라. 그 판단이 더 높은 감축을 요구한다면 실제 규제와 정책에 반영하라.


둘째, 상한과 하한이 남기는 배출과 위험의 차이를 공개하라. 가장 많이 줄이는 경로와 가장 적게 줄이는 경로를 따를 때 앞으로 쌓일 이산화탄소의 총량이 각각 얼마인지 제시하라. 1.5℃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더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총량, 즉 탄소예산과 한국의 각 경로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 차이가 사람과 지역의 안전, 공공재정과 기반시설에 어떤 위험을 더하는지 시민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로 공개하라. 지금까지 계산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계산하라.


셋째,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이 새로 만드는 배출을 감축경로와 함께 제시하라. 새로운 산업단지와 대규모 개발, 데이터센터와 전력수요 전망을 발표하면서 그로 인해 늘어날 배출량은 밝히지 않는 방식으로는 국가의 기후대응을 판단할 수 없다. 하나의 정책이 앞으로 사용할 탄소예산이 얼마인지, 다른 부문의 감축 부담을 얼마나 키우는지, 국가의 전체 감축경로를 어떻게 바꾸는지 같은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하라.


넷째, 기후위기 적응과 회복력 강화를 위한 법이 실제 보호로 이어지게 하라. 적응을 재난이 발생한 뒤 복구비를 지급하는 일로 축소하지 마라. 안전한 노동과 주거, 의료와 돌봄, 물과 식량, 에너지와 지역 기반시설이 반복되는 위험 속에서도 유지되도록 미리 투자하라. 소득과 건강 상태, 사는 지역과 가족의 돌봄 능력에 따라 안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뉘지 않도록 공공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을 국가 기후대응의 중심에 두어라. 


다섯째, 이번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으로 헌법재판소 결정의 이행은 끝나지 않는다.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는 법에 원칙과 숫자를 적는 것만으로 이행되지 않는다.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넘기지 않겠다는 원칙이 실제 감축수준을 정할 때 어떤 판단 기준으로 작동했는지, 가장 적게 줄이는 경로가 국민을 보호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입증해야 한다. 범위형 목표를 만들었다는 사실로 국가가 누구를 어느 정도까지 보호할 책임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UNEP 보고서가 내놓은 결과는 암울하다. 이미 사라진 선택지가 있고, 피하기 어려워진 피해가 있으며, 다시 1.5℃ 아래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암울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손을 놓는 것은 다르다. 이미 잃어버린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남은 가능성까지 버릴 수는 없다. 온도가 얼마나 높이 오를지, 1.5℃를 넘은 상태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삶과 생태계를 잃게 될지는 여전히 지금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1.5℃로 돌아가는 길은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서로에게 미루는 일을 멈추고, 지금 쥐어야 할 책임을 쥐어야한다. 1.5℃를 넘는다고 책임까지 넘길 수는 없다.


2026년 9월 3일
청소년기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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