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전환]공공재생에너지 국제 심포지엄 토론문 (20240910)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의 사례와 시사점을 들을 수 있는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헌법소원 결정문을 바탕으로 공공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를 토론했습니다.


[토론문 전문]

청소년기후행동(Youth 4 Climate Action)의 청소년 19명은 2020년 3월,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최상위 법에 대해 헌법소원(Constitutional Complaint)을 청구했습니다. 이후 새로운 법이 제정되고 시행령이 나오고 그에 따라 하위 행정 계획이 나오는 동안에도 다양한 단위의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4년 반이 흘러 이 헌법소원은 지난 8월 29일 일부 위헌으로 승소 판결이 났습니다. 


헌법소원은 우리에게 필요한 기후 대응의 최선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사회가 물러서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을 제시합니다. 이 소송의 승소로 확인한, 후퇴 불가한 국가 기후 대응의 마지노선은 분명했습니다.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이 위험 상황으로서 기후위기를 인지하고 국민의 종합적 기본권으로서 환경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국가에 국민의 환경권을 보호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은 기후위기의 위험을 장기적으로 줄이고 사회가 존재하는 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게 지속할 대책을 계속 진전된 방향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환경권은 단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생명, 신체의 자유, 삶의 질, 생활 환경과 안전에 대한 것이 모두 포괄되는 종합적 기본권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기후 대응이 국민의 환경권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말은 가장 기본적인 안전한 삶, 사람다운 삶을 최소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겐 확실하고 안전한 온실가스의 감축 수단이 필요하며, 지속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호주의 사례를 보면, 기존의 시장 논리를 반복하며 유지한 채로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주장은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화석연료보다 값싼 에너지니 선택되어야 한다거나 재생에너지 시장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선택하고 선언하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히 전환은 가능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죠.) 오랫동안 견고히 이어지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에너지가 생산되고 이용되는 맥락은 모두 무시한 채, 공공을 사유화하여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재생에너지 시장 확장과 기업의 재생에너지 선택지를 늘리는 건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목표가 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타당하지도 않습니다. 재생에너지로 더 값싸게 전기를 만들고, 더 좋은 시장이 열린대도 (열리지도 않겠지만) 기후위기의 위험을 줄일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기후위기의 위험을 줄이고, 위기 속에서도 삶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입니다. 단지 시장 창출이나 재생에너지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의 목적을 헷갈려서는 안 됩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다양한 단위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양한 역할이 있으니 시장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말은 시장주의 논리를 강화하는 핑계입니다. 그건 모로 가도 탄소만 줄이면 된다는 말과 다를 게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지금 기후위기 대응에서 시장을 완전히 지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환의 목적과 원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에너지공급원 중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기후위기를 막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기후 위기 대응이라고 칭하지도, 기후 운동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실패한 기후 대응을, 차별적인 기후위기를 만든 방식을 반복할 뿐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31년도부터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정량적 수준에 관하여 법률에 직접 규정하지 않은 것”이 헌법불합치(partially unconstitutional)라고 판단한 주된 이유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정량적 수준의 설정을 오로지 정부의 판단에만 맡길 경우, 단기적인 감축 부담을 고려하여 장기적으로 감축 부담을 더 증가시키고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하기 어렵게 됨으로써 기후위기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제도적 실효성을 갖추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기후위기의 위험을 실제로 줄여 나가고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흐름이나 그때그때 정부의 판단에 기대는 게 아니라 가중되지도 차별적이지도 않은 감축이 가능한 방법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공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방식의 공공재생에너지 전환이 필요합니다. 시장 흐름에 의해 바뀌거나, 정치적 논쟁거리로서 재생에너지냐, 다른 무탄소 전원이냐를 논의하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장기적이고 확실한 감축 방법이자 또한 전환 방법 자체가 하나의 공공성과 안전망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감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공재생에너지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 에너지 생산 및 공급을 사유하게 될 경우, 우리는 우리 삶의 필수재인 에너지를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헌법재판소조차도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한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공공재생에너지는 공동체 내의 정치적 결정을 수용하고 따를 방법입니다. 


뉴욕주의 사례는 사적 소유가 아닌 공적 소유로 전환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운동의 접근 방식 사례와 실제 제도적 실행이 어떻게 가능할지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적 소유에 둔다는 말은 단지 부를 어디로 집중시킬지에 대한 논의만을 반복하여 사회적 위험을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환이 아니라 더 많은 수익 창출이 목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방식이 기존의 지역을 종속시키고 공공을 사유화하여 특권을 가진 장소를 생산하는 방식으로는 위험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촉구하며 제출했던 국민참여의견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으려고 뉴스를 보면, 민영화한다는 말들이 종종 들려옵니다. 민영화는 삶에 너무 당연하게 필요한 것들을 개인의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지금 전기나 가스의 비용이 오르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당장 죽는 것이 아니라 해도 앞날이 없는 삶은 비참합니다.”


깨끗한 에너지라고 해서 모든 게 허용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석탄 발전을 하는 민영화는 나쁘고 재생에너지 민영화는 허용 가능한 게 아닙니다. 민영화는 시장 중심의 접근은 전환 과정에 있는 사람을 거리로 내몰고 빈곤과 고립에 빠지게 하는 방식입니다.


기후위기 속에서 사회의 자원을 분배할 때 우리는 필수재의 접근성을 소수의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삶과 사회의 유지를 위해 확보하는 방식, 위험이 커지지 않도록 사회가 그럴 여지가 있는 것을 통제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정의로운’ 공공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전환은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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