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헌법소원] ICJ 토론회 토론문 (20250827)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의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라는 권고적 의견을 발표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국제사법재판소 권고적 의견에 대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헌법소원 결정과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를 함께 다뤘습니다. 토론문 일부를 공유합니다.



헌법소원은 기후위기를 ‘삶의 권리’로 다루는 후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제시했습니다. ICJ 권고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이제 국제사회는 기후 대응을 더 이상 경제나 외교에서 조율할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람의 삶과 권리를 지킬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ICJ 권고나 헌법소원 결정은 국제적·정치적 기준을 새로 세웁니다. 기존의 정치와 사회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법은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라는 기후 대응의 기준을 세우며 변화를 요구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국가의 기후 대응 논의가 이루어질 때, 항상 산업계의 몫이나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각 나라의 몫을 말하면 그것도 너무 많은 부담이라는 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5도를 지킬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엄격한 권고가 나온다는 것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사법은 후퇴할 수 없는 선을 제시합니다. 


헌법소원 결정이 나온 지 1년이 흘렀지만, 정부의 논의에서 들려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건 알지만 부담스럽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후 대응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논의조차 ‘부담을 어떻게 줄일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국가이익이라는 것이 단기적 경제 이익으로만 해석된다면, 결국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국가 전체의 안전과 존속일 것입니다. 지금 ‘부담스럽다’라는 말은 사실상 기존 질서를 유지하자는 말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질서가 과연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습니까? 국가이익은 단기적 경제 논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존 조건과 안전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 질서 속에서 새로운 기준이 계속 제시되는 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담스럽다’라는 말을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까지 제대로 대응한 적이 없기에 새로운 방식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법적 판단이 있어야만 기준이 바뀔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기존의 방식이 얼마나 견고했고 바뀌지 않으려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회는 이제까지 기후위기 속에서 안전할 권리보다 온실가스 배출과 경제 논리를 더욱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이 기준은 현재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운 기준과 권리를 부담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현재 다른 작동 방식과 기준의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억누르고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부담스럽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정부에서 사람들에게 ‘우리 정부도 이런 기준을 이해하고 준비하고 싶어, 어떻게 할까?’라고 말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합니다.


‘왜 지금까지는 하지 않았는가?’, ’온실가스 배출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제 바뀐 기준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입니다.


2025.08.27

 

기행레터 구독하기

〈기행레터〉는 청소년기후행동이 제공하는 뉴스레터 서비스입니다.
청기행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만들어가는 변화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구독해 주세요!

이전 기행레터가 궁금하다면?  👉 https://gihang.stibee.com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후원,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