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헌법소원의 첫 번째 공개변론이 진행되던 날 청소년기후행동의 발언문입니다. 헌법소원이 누군가의 이익 다툼이 아닌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함임을 강조하며 발언을 진행했습니다.

기후 헌법소원 1차 공개변론 청기행 발언문
헌법소원이 시작되고 4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우리가 싸울 방법은 많지 않아서 헌법소원조차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자격과 지위를 따졌고 권위 있는 사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헌법소원은 평범한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헌법소원은 늘 진행 중이었습니다. 가끔은 잊기도 하고 무뎌지고, 멈춘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 우리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기후위기는 가시화된 문제가 아니라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싸우는 것 또한 대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헌법소원의 진행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헌법소원을 청구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진 않습니다. 법정 안에 설 수 없는 우리는 법정 밖에서 늘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캠페인을 하고 기후파업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헌법소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어떻게 싸울지를 고민했습니다. 변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청기행으로서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압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4년이나 지난 지금, 기후위기에 있어서 이 시간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불안했습니다. 지금 판결이 난다고 해서 우리에게 기후위기를 막을 시간이 남아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최저선을, 삶을 지킬 수 있을까? 매 해마다 헌재로 나와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아직 기회가 있을 테니까. 우리는 그래서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부와 국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외치는 것뿐이었습니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당사자를 부정당하고 안전할 권리를 부정당한 채 이익싸움의 일환으로만 치환됐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익다툼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 손해를 보는 제로섬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붕괴시킬 재난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평범한 개인이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재난입니다. 우리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이익 추구가 아니라 우리 삶을 지키는 최저선의 요구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기업과 산업의 이익추구권도 중요하지만 이익다툼 이전에 우리의 삶을 봐줄 곳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로부터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미래세대가 아니라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지킬 수 있길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이전부터 변화의 순간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습니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가끔은 포기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법정 안에서 우리는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법정 안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후헌법소원의 첫 번째 공개변론이 진행되던 날 청소년기후행동의 발언문입니다. 헌법소원이 누군가의 이익 다툼이 아닌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함임을 강조하며 발언을 진행했습니다.
기후 헌법소원 1차 공개변론 청기행 발언문
헌법소원이 시작되고 4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우리가 싸울 방법은 많지 않아서 헌법소원조차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자격과 지위를 따졌고 권위 있는 사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헌법소원은 평범한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헌법소원은 늘 진행 중이었습니다. 가끔은 잊기도 하고 무뎌지고, 멈춘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 우리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기후위기는 가시화된 문제가 아니라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싸우는 것 또한 대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헌법소원의 진행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헌법소원을 청구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진 않습니다. 법정 안에 설 수 없는 우리는 법정 밖에서 늘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캠페인을 하고 기후파업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헌법소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어떻게 싸울지를 고민했습니다. 변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청기행으로서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압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4년이나 지난 지금, 기후위기에 있어서 이 시간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불안했습니다. 지금 판결이 난다고 해서 우리에게 기후위기를 막을 시간이 남아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최저선을, 삶을 지킬 수 있을까? 매 해마다 헌재로 나와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아직 기회가 있을 테니까. 우리는 그래서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부와 국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외치는 것뿐이었습니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당사자를 부정당하고 안전할 권리를 부정당한 채 이익싸움의 일환으로만 치환됐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익다툼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 손해를 보는 제로섬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붕괴시킬 재난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평범한 개인이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재난입니다. 우리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이익 추구가 아니라 우리 삶을 지키는 최저선의 요구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기업과 산업의 이익추구권도 중요하지만 이익다툼 이전에 우리의 삶을 봐줄 곳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로부터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미래세대가 아니라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지킬 수 있길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이전부터 변화의 순간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습니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가끔은 포기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법정 안에서 우리는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법정 안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