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기후대응은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임을 명확히 했음에도 2035 NDC 논의는 ‘몇 퍼센트를 줄일 것인가?’의 수치 싸움으로만 지속되었습니다. 목표가 아닌 권리가 지켜지는 NDC가 필요한 것이라며 기고한 글입니다.
기고 링크: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226663.html
[기고] 기후위기의 위험 속에서도 존재해야 하는 건 우리의 삶이다
1.5도는 단순한 온도 목표가 아니다. 회복할 수 있는, 되돌아갈 수 있는 범위의 제한선이며 위험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지점을 알리는 경고다. 이 수치는 과학이 제시한 예측이 아니라, 사회가 언제까지 대응해야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현실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경고 알림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없다. 그 안에서 무엇을, 어느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지 정하는 사회적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결정권을 가진 이들의 판단과 이해관계에 따라 기후 대응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기후 헌법소원 결정 이후, 사회는 더 후퇴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선을 갖게 되었다. 권리가 기후 대응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제 기후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삶이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위험을 국민이 존엄한 삶을 지킬 수 있는 수준까지 줄이는 것, 재난과 위험을 겪더라도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와 서로 다른 취약성을 고려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행정 서류에서 수치만을 조정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 기후 대응은 단순히 목표를 설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여전히 기후위기를 통제 가능한 행정 절차로 다루고 있다. 산업의 부담, 실현 가능성, 경제성 같은 단어들이 정책의 중심을 차지하고, 국민의 생존과 권리라는 기준은 뒷자리로 밀려나 있다. 위기를 관리의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정치의 책임은 사라지고 행정의 논리만 남는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민의 권리와 안전이라는 헌법적 의무의 문제인데도 정부는 절차와 형식을 내세워 그 책임을 가리고 있다. ‘공청회’, ‘의견 수렴’, ‘위원회 논의’ 같은 말이 민주주의의 형식을 흉내 내지만, 실제로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정당성을 덧씌우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형식적 민주주의가 반복되는 한 기후 정책은 권리의 언어로 전환되지 못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중심에는 여전히 산업과 행정의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언제까지 현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가?’만 계산하고 있다. 이 구조는 기후위기의 당사자를 여전히 ‘미래세대’로만 다룬다는 점이다. 정부는 ‘미래를 위한 노력’을 말하지만, 정작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은 논의의 밖에 있다. 우리는 당사자이면서도 ‘아직 존재하지 않은 세대’로 취급된다.
하지만 ‘미래세대’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표현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누적되는 피해를 드러내는 말이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지금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맞닿아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희생하자’라는 말은 틀렸다. 그 말은 지금 여기서 고통받는 사람의 현실을 지워버린다. 진짜 의미는 다르다. 지금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구조를 멈추고 전환하라는 요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국제 사법재판소(ICJ)의 권고 역시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더 희생하라’는 도덕적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발생한 피해를 줄이고, 지금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법적 명령이다. 미래세대라는 말은 겉치레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위험을 더는 누적하지 말라는 사회적 경고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기후 대응이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임을 명확히 했다.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복잡하지 않다. 권리를 보호하는 기준을 명시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와 정의로운 전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2035 NDC는 그 안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는 목표가 아니라, 권리가 지켜지는 사회의 약속을 요구한다.
정부가 말하는 ‘기한’은 행정의 시간이지, 사회의 시간은 아니다. 기후대응이란 결국 사회의 인프라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빠른 제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권리 기반 기후 대응의 본질이다.
정부는 위험 경고가 울렸는데도 가장 안전한 대응 매뉴얼을 무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세운 기준은 행정 절차 속에서 해체되었다. 이것은 정책의 공백이 아니라 책임의 부재이다. 기준은 이미 세워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기준을 현실로 옮길 정치적 결단이며, 그 결단만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기후대응은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임을 명확히 했음에도 2035 NDC 논의는 ‘몇 퍼센트를 줄일 것인가?’의 수치 싸움으로만 지속되었습니다. 목표가 아닌 권리가 지켜지는 NDC가 필요한 것이라며 기고한 글입니다.
기고 링크: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226663.html
[기고] 기후위기의 위험 속에서도 존재해야 하는 건 우리의 삶이다
1.5도는 단순한 온도 목표가 아니다. 회복할 수 있는, 되돌아갈 수 있는 범위의 제한선이며 위험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지점을 알리는 경고다. 이 수치는 과학이 제시한 예측이 아니라, 사회가 언제까지 대응해야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현실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경고 알림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없다. 그 안에서 무엇을, 어느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지 정하는 사회적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결정권을 가진 이들의 판단과 이해관계에 따라 기후 대응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기후 헌법소원 결정 이후, 사회는 더 후퇴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선을 갖게 되었다. 권리가 기후 대응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제 기후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삶이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위험을 국민이 존엄한 삶을 지킬 수 있는 수준까지 줄이는 것, 재난과 위험을 겪더라도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와 서로 다른 취약성을 고려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행정 서류에서 수치만을 조정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 기후 대응은 단순히 목표를 설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여전히 기후위기를 통제 가능한 행정 절차로 다루고 있다. 산업의 부담, 실현 가능성, 경제성 같은 단어들이 정책의 중심을 차지하고, 국민의 생존과 권리라는 기준은 뒷자리로 밀려나 있다. 위기를 관리의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정치의 책임은 사라지고 행정의 논리만 남는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민의 권리와 안전이라는 헌법적 의무의 문제인데도 정부는 절차와 형식을 내세워 그 책임을 가리고 있다. ‘공청회’, ‘의견 수렴’, ‘위원회 논의’ 같은 말이 민주주의의 형식을 흉내 내지만, 실제로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정당성을 덧씌우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형식적 민주주의가 반복되는 한 기후 정책은 권리의 언어로 전환되지 못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중심에는 여전히 산업과 행정의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언제까지 현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가?’만 계산하고 있다. 이 구조는 기후위기의 당사자를 여전히 ‘미래세대’로만 다룬다는 점이다. 정부는 ‘미래를 위한 노력’을 말하지만, 정작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은 논의의 밖에 있다. 우리는 당사자이면서도 ‘아직 존재하지 않은 세대’로 취급된다.
하지만 ‘미래세대’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표현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누적되는 피해를 드러내는 말이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지금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맞닿아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희생하자’라는 말은 틀렸다. 그 말은 지금 여기서 고통받는 사람의 현실을 지워버린다. 진짜 의미는 다르다. 지금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구조를 멈추고 전환하라는 요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국제 사법재판소(ICJ)의 권고 역시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더 희생하라’는 도덕적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발생한 피해를 줄이고, 지금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법적 명령이다. 미래세대라는 말은 겉치레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위험을 더는 누적하지 말라는 사회적 경고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기후 대응이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임을 명확히 했다.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복잡하지 않다. 권리를 보호하는 기준을 명시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와 정의로운 전환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2035 NDC는 그 안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는 목표가 아니라, 권리가 지켜지는 사회의 약속을 요구한다.
정부가 말하는 ‘기한’은 행정의 시간이지, 사회의 시간은 아니다. 기후대응이란 결국 사회의 인프라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빠른 제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권리 기반 기후 대응의 본질이다.
정부는 위험 경고가 울렸는데도 가장 안전한 대응 매뉴얼을 무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세운 기준은 행정 절차 속에서 해체되었다. 이것은 정책의 공백이 아니라 책임의 부재이다. 기준은 이미 세워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기준을 현실로 옮길 정치적 결단이며, 그 결단만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