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 기후헌법소원을 처음 시작했던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이자, 의제숙의단에 참여했던 활동가입니다. 오늘 저도 의제숙의단에서의 사퇴 입장을 밝힙니다.
의제숙의단에 참여하기 전까지, 입법기관의 책임이 개선 입법 시한이 다다른 시점에서 공론화 절차로 넘어간 것에 대해 이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의제숙의단에 참여했던 이유는 이미 공론화 절차로 논의가 넘어간 상황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감축 경로를 설정하는 문제는 사회적 이해와 지지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숙의’가 이루어진다면 결과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공론화는 단지 입법기관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제숙의단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전제로 어떤 의제를 설정해야 시민참여단의 ‘숙의’를 가능하게 할지, 그래서 우리 사회의 전환을 그릴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참여했습니다. 기존 기후 거버넌스는 정보와 참여가 비대칭적인 구조 속에서 산업의 단기적 이익이 가장 우선되는 의사결정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번만큼은 헌법재판소 결정이라는 최소한의 기준 안에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균형있게 제공한다면 그 결과는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헛된 기대였습니다.
의제숙의단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제안한 내용은 무시된 채, 결국 '볼록 경로(나중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가 슬그머니 선택지에 포함되었습니다. 공론화 위원회는 타당한 이유도 아닌 절차적 공정성 확보가 그 이유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숙의가 아닙니다.
이 공론화 절차에 더이상 의제숙의단으로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이 공론화는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기본권 보호 의무'의 본질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기후 헌법소원을 '미래세대의 소송'이라 부르기도 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미래세대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실제 청구인들은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중장년까지 모든 연령대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후 위기로부터 기본권을 보호받아야 할 '권리 보유자'임을 인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말한 '미래로 과중한 부담을 전가하면 안 된다'는 것은 단순히 태어나지 않은 불특정한 미래 세대만의 부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누적되는 위험을 고려할 때, 볼록 경로는 단순히 미래로 부담과 책임을 미루는 선택을 넘어, 그 미뤄진 시간 동안 기후 위험의 총량을 키워 세대 간과 세대 내에서 위험을 불균등하게 확대하는 가장 위험한 선택지입니다.
단순히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을 넘어, 위험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계층이나 위치성에 따른 차등적 피해를 비가역적으로 키우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후위기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존엄한 삶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헌재 결정을 바로 앞에서 반박하는 것입니다. 시민 공론장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리라면 더더욱 이런 식으로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시민들이 선택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위헌적 요소를 '공식적인 선택지'로 올린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는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권 보호의 마지노선을 마치 ‘선호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영역'으로 격하시킨 행위입니다.
둘째, 이 공론화 절차는 시민참여단에게 편향된 기준을 선택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민참여단에게 제시되는 선택지는 그 자체가 이미 판단 기준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 대응에서 시간은, 또 그 시간에 따른 위험은 결코 대등하지 않습니다. 감축 경로 즉, 감축의 시간적 분배를 고려할 때,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 전체 기간 동안 비슷하게 감축하는 방식, 나중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 (볼록)’은 사실 동일한 무게로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애초에 모든 선택지가 동일한 무게를 가지지 않는데, 아무 제약 조건 없이 나중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 (볼록)이 놓인 것 자체가 중립성의 훼손입니다. 각 선택지가 초래할 결과적 위험의 무게를 완전히 지운 채로 마치 메뉴를 고르듯이 동일한 비중의 선택지로 나열한 것 자체가 이미 기후위기의 비가역성을 부정하는 프레임입니다. 나중으로 미룬다는 결정은 감축 시기의 차이가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재난을 초래하는, 위헌 소지가 큰 결정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기관에 재량권이 있더라도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충족하는 기준선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명시했습니다. 지금처럼 그 기준을 없애고 어떤 위험도 대등하게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절차적 공정성이 아니라, 편향된 프레임의 개입일 뿐입니다.
셋째, 장기적 전환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나 프레임 자체도 편향되어 있습니다
헌법소원 결정 이후 주어진 개선 입법을 할 수 있었던 긴 시간 동안 한국의 누적 배출량 데이터나 장기적인 누적 위험에 대해 정책적으로 판단할 근거는 전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민참여단이 무엇이 더 위험한 결정인지 '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되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볼록 경로까지 포함된 공론장의 설계에서는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볼록 경로'가 선택지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대다수 시민이 헌법소원 같은 사법 절차를 거쳐야만 '안전할 권리'를 확인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방증합니다. 또한 헌법소원 결정에 따라 기본권 보호 의무를 충족할 수 있는 기후대응이라는 것이 이미 무너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결국 본질은 이 선택지에 누가 이익을 보는가에 있습니다. 볼록 경로로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오랜 시간 탄소 배출을 통해 이익을 쌓아온 기업들입니다. 반면 장기적 위험을 줄여야만 대다수 시민의 기본권이 보호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론화를 통해 이를 묻는 것은 역사적 배출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무시하고, 기후 대응의 부담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전환의 공정한 분담을 논하는 게 아니라, 볼록 경로를 제시하며 사실상 "시민 당신들이 얼마나 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느냐"고 묻는 프레임은 그 자체로 기만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면, 결국 '열린 논의'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결과가 제출될 것이고, 국회는 시민의 의견이 무엇이든 입맛대로 이용하며 책임을 회피할 것입니다. 이미 볼록 경로 반영에서부터 숙의는 깨졌습니다.
의제숙의단에 사퇴함으로써 이 공론화의 기만성을 드러내는 것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거부이자 숙의입니다. 국회와 공론화 위원회는 시민의 이름을 빌린 책임 회피를 즉각 중단하고, 헌법소원 결정에 부합하는 입법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2026.03.25
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 기후헌법소원을 처음 시작했던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이자, 의제숙의단에 참여했던 활동가입니다. 오늘 저도 의제숙의단에서의 사퇴 입장을 밝힙니다.
의제숙의단에 참여하기 전까지, 입법기관의 책임이 개선 입법 시한이 다다른 시점에서 공론화 절차로 넘어간 것에 대해 이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의제숙의단에 참여했던 이유는 이미 공론화 절차로 논의가 넘어간 상황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감축 경로를 설정하는 문제는 사회적 이해와 지지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숙의’가 이루어진다면 결과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공론화는 단지 입법기관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제숙의단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전제로 어떤 의제를 설정해야 시민참여단의 ‘숙의’를 가능하게 할지, 그래서 우리 사회의 전환을 그릴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참여했습니다. 기존 기후 거버넌스는 정보와 참여가 비대칭적인 구조 속에서 산업의 단기적 이익이 가장 우선되는 의사결정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번만큼은 헌법재판소 결정이라는 최소한의 기준 안에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균형있게 제공한다면 그 결과는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헛된 기대였습니다.
의제숙의단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제안한 내용은 무시된 채, 결국 '볼록 경로(나중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가 슬그머니 선택지에 포함되었습니다. 공론화 위원회는 타당한 이유도 아닌 절차적 공정성 확보가 그 이유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숙의가 아닙니다.
이 공론화 절차에 더이상 의제숙의단으로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이 공론화는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기본권 보호 의무'의 본질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기후 헌법소원을 '미래세대의 소송'이라 부르기도 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미래세대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실제 청구인들은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중장년까지 모든 연령대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후 위기로부터 기본권을 보호받아야 할 '권리 보유자'임을 인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말한 '미래로 과중한 부담을 전가하면 안 된다'는 것은 단순히 태어나지 않은 불특정한 미래 세대만의 부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누적되는 위험을 고려할 때, 볼록 경로는 단순히 미래로 부담과 책임을 미루는 선택을 넘어, 그 미뤄진 시간 동안 기후 위험의 총량을 키워 세대 간과 세대 내에서 위험을 불균등하게 확대하는 가장 위험한 선택지입니다.
단순히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을 넘어, 위험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계층이나 위치성에 따른 차등적 피해를 비가역적으로 키우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후위기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존엄한 삶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헌재 결정을 바로 앞에서 반박하는 것입니다. 시민 공론장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리라면 더더욱 이런 식으로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시민들이 선택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위헌적 요소를 '공식적인 선택지'로 올린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는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권 보호의 마지노선을 마치 ‘선호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영역'으로 격하시킨 행위입니다.
둘째, 이 공론화 절차는 시민참여단에게 편향된 기준을 선택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민참여단에게 제시되는 선택지는 그 자체가 이미 판단 기준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 대응에서 시간은, 또 그 시간에 따른 위험은 결코 대등하지 않습니다. 감축 경로 즉, 감축의 시간적 분배를 고려할 때,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 전체 기간 동안 비슷하게 감축하는 방식, 나중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 (볼록)’은 사실 동일한 무게로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애초에 모든 선택지가 동일한 무게를 가지지 않는데, 아무 제약 조건 없이 나중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 (볼록)이 놓인 것 자체가 중립성의 훼손입니다. 각 선택지가 초래할 결과적 위험의 무게를 완전히 지운 채로 마치 메뉴를 고르듯이 동일한 비중의 선택지로 나열한 것 자체가 이미 기후위기의 비가역성을 부정하는 프레임입니다. 나중으로 미룬다는 결정은 감축 시기의 차이가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재난을 초래하는, 위헌 소지가 큰 결정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기관에 재량권이 있더라도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충족하는 기준선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명시했습니다. 지금처럼 그 기준을 없애고 어떤 위험도 대등하게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절차적 공정성이 아니라, 편향된 프레임의 개입일 뿐입니다.
셋째, 장기적 전환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나 프레임 자체도 편향되어 있습니다
헌법소원 결정 이후 주어진 개선 입법을 할 수 있었던 긴 시간 동안 한국의 누적 배출량 데이터나 장기적인 누적 위험에 대해 정책적으로 판단할 근거는 전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민참여단이 무엇이 더 위험한 결정인지 '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되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볼록 경로까지 포함된 공론장의 설계에서는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볼록 경로'가 선택지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대다수 시민이 헌법소원 같은 사법 절차를 거쳐야만 '안전할 권리'를 확인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방증합니다. 또한 헌법소원 결정에 따라 기본권 보호 의무를 충족할 수 있는 기후대응이라는 것이 이미 무너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결국 본질은 이 선택지에 누가 이익을 보는가에 있습니다. 볼록 경로로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오랜 시간 탄소 배출을 통해 이익을 쌓아온 기업들입니다. 반면 장기적 위험을 줄여야만 대다수 시민의 기본권이 보호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론화를 통해 이를 묻는 것은 역사적 배출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무시하고, 기후 대응의 부담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전환의 공정한 분담을 논하는 게 아니라, 볼록 경로를 제시하며 사실상 "시민 당신들이 얼마나 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느냐"고 묻는 프레임은 그 자체로 기만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면, 결국 '열린 논의'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결과가 제출될 것이고, 국회는 시민의 의견이 무엇이든 입맛대로 이용하며 책임을 회피할 것입니다. 이미 볼록 경로 반영에서부터 숙의는 깨졌습니다.
의제숙의단에 사퇴함으로써 이 공론화의 기만성을 드러내는 것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거부이자 숙의입니다. 국회와 공론화 위원회는 시민의 이름을 빌린 책임 회피를 즉각 중단하고, 헌법소원 결정에 부합하는 입법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202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