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서]
국가의 기후책임을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아라
: 탄소중립기본법 심사가 드러낸 것, 개헌 논의가 답해야 할 것
지난 7월 17일, 국회 제헌절 경축식에서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입법을 경계하고 국회의 헌법적 책임을 강조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경축사에서 개헌을 향한 구체적인 일정과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는 법률을 만들지 않는 것만큼이나, 기후위기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입법 역시 문제다.
국회가 개헌을 논의한다면 함께 답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새 헌법은 이미 존재하는 국가의 기후책임을 더 분명히 할 수 있는가. 국가는 기후위험을 줄이고, 국가의 결정으로 그 위험을 가속하지 않으며, 이미 발생하는 피해로부터 모든 사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책임을 진다. 그러나 책임은 오늘의 국가 의사결정에서 구체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1.국회의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과정이 드러낸 기본권 보호의 공백
제헌절로부터 닷새 뒤인 7월 22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는 헌법재판소가 정한 개정 시한을 넘긴 뒤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은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어떠한 형태로도 규정하지 않은 것은 과소보호금지원칙에 위반되며, 기후위기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회는 2031년 이후의 감축목표를 하나의 경로가 아니라 상한과 하한 사이의 범위로 규정했다. 2018년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2035년 53~61%, 2040년 69~80%, 2045년 84~90%의 범위에서 감축목표를 정하도록 했다.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경로와 매년 일정 비율로 감축하는 경로가 각각 상한과 하한이 되어 하나의 목표 안에 함께 담겼다. 두 경로 사이에는 2031년부터 2050년까지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약 9억 톤에 가까운 누적배출량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연간 배출량을 훨씬 넘는 양이다.
무엇보다 이행수단과 연결되어 실제 구속력을 갖는 숫자는 하한 하나이고, 상한에는 그것을 실현할 수단이 붙지 않았다. 설령 산업의 부담을 고려하면서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함이라 해도 범위는 그 뜻과 다르게 작동한다. 결국 이 법률 구조에서 기후위기 속 기본권 보호 수준은 하한에 놓이게 된다. 그보다 높은 보호가 이루어질 것인지는 2031년과 2036년의 대통령령에 달렸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요구한 장기 감축경로는 다시 정부의 선택에 맡겨졌다.
이 범위의 실질을 하한에 두면서 상한까지 정한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상한으로 인해 대통령령은 그보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정할 수 없게 되었다. 법률이 기본권 보호 수준의 천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국회가 직접 설계한 공론화에서 시민대표단의 77.9%는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그러나 실제 구속력을 갖게 된 하한은 그 반대편의 경로였다. 시민대표단의 판단을 반영하지 않은 이유도, 각 경로가 국민의 권리와 사람·지역에 따라 다르게 분배될 위험과 부담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도 심사 결과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산업의 이행 여건과 전환 지원은 구체적으로 논의됐고, 이를 지원할 국가의 책임은 법 조항이 되었다. 그러나 감축을 늦춤으로써 커지는 기후위험을 산업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판단되지 않았다. 산업의 전환을 지원할 책임은 구체화됐지만, 기후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보호할 책임은 다시 추상적인 원칙에 머물렀다.
국회는 이 하한이 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에 충분한 기준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기본권 보호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입법에서 이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요구한 입법의 결과에 부합하는지 국회는 답해야 한다.
2.국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첫째, 국가는 기후위험을 예방하고 충분히 줄여야 한다.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조치가 위험의 크기에 비례하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자신의 결정으로 그 위험을 가속하지 않아야 한다.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 재정정책이 감축목표와 분리되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국가는 이미 발생하는 재난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주거와 노동, 소득과 돌봄, 건강과 이동, 지역의 조건 때문에 안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뉘어서는 안 된다.
넷째, 국가는 기후위험과 전환의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 그 부담을 특정한 사람과 지역에 집중시키거나, 더 큰 위험과 감축 책임을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국가가 법률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했다는 사실은 다르다.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국가가 취한 조치가 실제 위험의 크기와 피해의 심각성에 비례해 충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폭염 속에서 정부가 "실내에 머무르라"고 안내하더라도, 안전하게 머물 실내가 없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한다. 대책은 그것이 전제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닿는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역시 마찬가지다. 숫자가 법률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목표가 실제로 위험을 줄이고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에 충분한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3.책임이 작동한다는 것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후책임을 확인했고, 국회는 그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를 두었다. 그런데 그 위원회가 결정한 것은 보호의 기준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두고, 그보다 높은 보호가 이루어질지는 다시 정부의 선택에 맡기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국가의 기후책임이 실제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는 자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기본권은 법률과 정책이 만들어진 뒤, 피해를 입은 시민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헌법재판을 청구해야 비로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기후헌법소원도 위험이 이미 누적된 뒤에야 국가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었다. 기본권은 헌법재판소에서 사후적으로 확인되는 원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회와 정부가 법률과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배분하고, 산업과 에너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판단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결정이 국민의 권리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감축목표와 에너지·산업·재정정책을 정할 때에는 그 결정이 기후위험을 충분히 줄이는지, 특정한 사람과 지역에 더 큰 피해와 전환 부담을 지우는지,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더 큰 위험과 감축 책임을 넘기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어떤 자료와 기준으로 보호 수준을 정했는지, 권리 침해를 줄일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충분히 검토했는지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규정하거나, 그 역할을 자신이 경험한 피해를 증언하는 데 한정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어떤 위험을 국가가 예방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호의 기준으로 삼을지, 어떤 대안을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절차가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는다.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이 국가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그 절차가 충실했는지뿐 아니라, 그 결과로 만들어진 법률과 정책이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지를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자리로 남는다.
기본권은 국가의 결정을 더 신속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원칙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효율과 평균만을 앞세워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을 지우지 못하도록 멈춰 세우는 기준이다. 누구의 권리가 영향을 받는지 살피고, 다른 대안을 검토하며, 판단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일은 분명 더 많은 시간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을 감당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다.
4. 국회와 정부, 개헌논의가 답해야할 것
개헌 논의 역시 국가의 기후책임을 구체화해야 할 자리다. 국가의 기후책임은 개헌으로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한다. 다만 그 책임이 국가의 구체적인 의사결정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환경권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의 결정을 구속하는 기준으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
국회가 개헌을 논의한다면 국가권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만큼, 그 권력이 국민의 삶을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 헌법에 '기후'라는 단어 하나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와 기본권 보호가 환경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에너지·노동·주거·교통·재정 등 국가의 모든 결정에서 적용되는 원칙이 되도록 하는 문제다. 이는 헌법학자와 정책 담당자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기후재난과 정책 전환을 서로 다른 삶의 조건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증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국가책임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5. 보호의 최소선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 타협은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기본권 보호를 자유롭게 타협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제헌절에 국회는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헌법을 약속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이 진실하려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과 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더 큰 위험과 책임을 떠넘기지 않아야 한다.
국회는 기본권 보호에 미치지 못하는 하한을 이행 기준으로 두고, 더 높은 보호 수준을 선택사항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감축목표를 법적 기준으로 확정하라.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남은 법안 심사와 정부의 정책 결정, 개헌을 포함한 제도 논의에서 답하라. 기본권이 사후적으로만 확인되는 원칙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모든 국가 의사결정에서 실질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지금부터 필요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라.
2026.07.30
청소년기후행동
[성명서]
국가의 기후책임을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아라
: 탄소중립기본법 심사가 드러낸 것, 개헌 논의가 답해야 할 것
지난 7월 17일, 국회 제헌절 경축식에서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입법을 경계하고 국회의 헌법적 책임을 강조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경축사에서 개헌을 향한 구체적인 일정과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는 법률을 만들지 않는 것만큼이나, 기후위기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입법 역시 문제다.
국회가 개헌을 논의한다면 함께 답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새 헌법은 이미 존재하는 국가의 기후책임을 더 분명히 할 수 있는가. 국가는 기후위험을 줄이고, 국가의 결정으로 그 위험을 가속하지 않으며, 이미 발생하는 피해로부터 모든 사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책임을 진다. 그러나 책임은 오늘의 국가 의사결정에서 구체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1.국회의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과정이 드러낸 기본권 보호의 공백
제헌절로부터 닷새 뒤인 7월 22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는 헌법재판소가 정한 개정 시한을 넘긴 뒤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은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어떠한 형태로도 규정하지 않은 것은 과소보호금지원칙에 위반되며, 기후위기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회는 2031년 이후의 감축목표를 하나의 경로가 아니라 상한과 하한 사이의 범위로 규정했다. 2018년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2035년 53~61%, 2040년 69~80%, 2045년 84~90%의 범위에서 감축목표를 정하도록 했다.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경로와 매년 일정 비율로 감축하는 경로가 각각 상한과 하한이 되어 하나의 목표 안에 함께 담겼다. 두 경로 사이에는 2031년부터 2050년까지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약 9억 톤에 가까운 누적배출량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연간 배출량을 훨씬 넘는 양이다.
무엇보다 이행수단과 연결되어 실제 구속력을 갖는 숫자는 하한 하나이고, 상한에는 그것을 실현할 수단이 붙지 않았다. 설령 산업의 부담을 고려하면서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함이라 해도 범위는 그 뜻과 다르게 작동한다. 결국 이 법률 구조에서 기후위기 속 기본권 보호 수준은 하한에 놓이게 된다. 그보다 높은 보호가 이루어질 것인지는 2031년과 2036년의 대통령령에 달렸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요구한 장기 감축경로는 다시 정부의 선택에 맡겨졌다.
이 범위의 실질을 하한에 두면서 상한까지 정한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상한으로 인해 대통령령은 그보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정할 수 없게 되었다. 법률이 기본권 보호 수준의 천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국회가 직접 설계한 공론화에서 시민대표단의 77.9%는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그러나 실제 구속력을 갖게 된 하한은 그 반대편의 경로였다. 시민대표단의 판단을 반영하지 않은 이유도, 각 경로가 국민의 권리와 사람·지역에 따라 다르게 분배될 위험과 부담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도 심사 결과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산업의 이행 여건과 전환 지원은 구체적으로 논의됐고, 이를 지원할 국가의 책임은 법 조항이 되었다. 그러나 감축을 늦춤으로써 커지는 기후위험을 산업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판단되지 않았다. 산업의 전환을 지원할 책임은 구체화됐지만, 기후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보호할 책임은 다시 추상적인 원칙에 머물렀다.
국회는 이 하한이 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에 충분한 기준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기본권 보호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입법에서 이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요구한 입법의 결과에 부합하는지 국회는 답해야 한다.
2.국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첫째, 국가는 기후위험을 예방하고 충분히 줄여야 한다.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조치가 위험의 크기에 비례하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자신의 결정으로 그 위험을 가속하지 않아야 한다.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 재정정책이 감축목표와 분리되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국가는 이미 발생하는 재난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주거와 노동, 소득과 돌봄, 건강과 이동, 지역의 조건 때문에 안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뉘어서는 안 된다.
넷째, 국가는 기후위험과 전환의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 그 부담을 특정한 사람과 지역에 집중시키거나, 더 큰 위험과 감축 책임을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국가가 법률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했다는 사실은 다르다.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국가가 취한 조치가 실제 위험의 크기와 피해의 심각성에 비례해 충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폭염 속에서 정부가 "실내에 머무르라"고 안내하더라도, 안전하게 머물 실내가 없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한다. 대책은 그것이 전제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닿는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역시 마찬가지다. 숫자가 법률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목표가 실제로 위험을 줄이고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에 충분한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3.책임이 작동한다는 것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후책임을 확인했고, 국회는 그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를 두었다. 그런데 그 위원회가 결정한 것은 보호의 기준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두고, 그보다 높은 보호가 이루어질지는 다시 정부의 선택에 맡기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국가의 기후책임이 실제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는 자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기본권은 법률과 정책이 만들어진 뒤, 피해를 입은 시민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헌법재판을 청구해야 비로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기후헌법소원도 위험이 이미 누적된 뒤에야 국가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었다. 기본권은 헌법재판소에서 사후적으로 확인되는 원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회와 정부가 법률과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배분하고, 산업과 에너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판단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결정이 국민의 권리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감축목표와 에너지·산업·재정정책을 정할 때에는 그 결정이 기후위험을 충분히 줄이는지, 특정한 사람과 지역에 더 큰 피해와 전환 부담을 지우는지,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더 큰 위험과 감축 책임을 넘기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어떤 자료와 기준으로 보호 수준을 정했는지, 권리 침해를 줄일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충분히 검토했는지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규정하거나, 그 역할을 자신이 경험한 피해를 증언하는 데 한정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어떤 위험을 국가가 예방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호의 기준으로 삼을지, 어떤 대안을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절차가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는다.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이 국가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그 절차가 충실했는지뿐 아니라, 그 결과로 만들어진 법률과 정책이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지를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자리로 남는다.
기본권은 국가의 결정을 더 신속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원칙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효율과 평균만을 앞세워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을 지우지 못하도록 멈춰 세우는 기준이다. 누구의 권리가 영향을 받는지 살피고, 다른 대안을 검토하며, 판단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일은 분명 더 많은 시간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을 감당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다.
4. 국회와 정부, 개헌논의가 답해야할 것
개헌 논의 역시 국가의 기후책임을 구체화해야 할 자리다. 국가의 기후책임은 개헌으로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한다. 다만 그 책임이 국가의 구체적인 의사결정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환경권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의 결정을 구속하는 기준으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
국회가 개헌을 논의한다면 국가권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만큼, 그 권력이 국민의 삶을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 헌법에 '기후'라는 단어 하나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와 기본권 보호가 환경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에너지·노동·주거·교통·재정 등 국가의 모든 결정에서 적용되는 원칙이 되도록 하는 문제다. 이는 헌법학자와 정책 담당자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기후재난과 정책 전환을 서로 다른 삶의 조건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증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국가책임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5. 보호의 최소선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 타협은 민주주의의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기본권 보호를 자유롭게 타협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제헌절에 국회는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헌법을 약속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이 진실하려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과 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더 큰 위험과 책임을 떠넘기지 않아야 한다.
국회는 기본권 보호에 미치지 못하는 하한을 이행 기준으로 두고, 더 높은 보호 수준을 선택사항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감축목표를 법적 기준으로 확정하라.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남은 법안 심사와 정부의 정책 결정, 개헌을 포함한 제도 논의에서 답하라. 기본권이 사후적으로만 확인되는 원칙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모든 국가 의사결정에서 실질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지금부터 필요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라.
2026.07.30
청소년기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