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시간 끝에 지난 7월 22일, 국회가 기후 헌법소원 결정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답은 또 기본권 보호를 모호하게 미루기.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기 감축 목표와 경로를 만들라고 명령한 것에 대해서 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하나의 분명한 기준이 아니라 ‘범위‘로 정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가장 낮은 목표를 선택하고도 법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회는 남은 심사 과정에서 1.5℃ 목표와 국제적 책임에 부합하는 감축경로를 분명한 최소 기준으로 정하고, 그 근거와 심사 과정을 공개해야 합니다. 법적 공백만 채울 것이 아니라, 기본권 보호의 공백을 해소해야 합니다.
아래 이 결정에 대한 성명서를 공유합니다.
본문 맨 아래에 관련한 용어 설명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명서]
‘범위’로 가린 기본권 보호의 공백, 국회는 책임 있는 감축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라
-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기후특위 법안심사 소위 의결에 대한 성명문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는 7월 22일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정한 개정 기한(2026년 2월 28일)을 다섯 달 가까이 넘긴 뒤였다.
개정안은 2035년, 2040년, 2045년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한과 하한의 범위로 법률에 규정하고, 구체적 수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아울러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대한민국이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하고,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법에 명시했다.
1. 형식은 채웠지만, 보호의 기준은 다시 비웠다
형식적으로 보면 헌재 결정이 요구한 것이 모두 담긴 것처럼 보인다. 장기 감축목표를 법률에 규정했고, 국제적 책임과 미래세대 부담 이전 금지도 법문에 들어갔다. 국회가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헌재 결정의 핵심은 2031년 이후의 감축경로를 규정하지 않은 결과 국민의 기본권이 충분히 보호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위헌의 이유는 감축경로의 '공백'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저버릴 만큼 국민을 위험에 방치했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후속 입법은 감축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수준과 구조를 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감축목표를 하나의 분명한 기준이 아니라 범위로 설정하면서, 무엇이 충분한 보호인지에 대한 판단을 다시 열어두었다. 국가는 앞으로 가장 낮은 목표를 선택하고도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법적 공백은 채웠지만,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보호의 기준은 다시 비워둔 것이다.
국가의 기후 목표는 사회가 위험을 어디까지 줄이고 어떤 방향과 속도로 전환할지를 정하는 기준이다. 그 기준이 있어야 지금의 정책이 충분한지 부족한지 평가할 수 있다. 목표를 범위로 두고 낮은 쪽을 합법적인 선택으로 남겨두면, 실패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후퇴를 제도로 만들게 된다.
2. 1.5℃ 경로는 골라도 되는 상한이 아니라, 지켜야 할 기준이다.
개정안은 하한을 2050년 탄소중립까지 일정한 속도로 줄이는 선형감축경로로, 상한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경로로 설명한다. 그런데 배출권 거래제처럼 실제로 산업을 움직이는 규제에는 하한을 적용하도록 했다.
여기에 분명한 모순이 있다. 법에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말라는 원칙을 적어놓고, 정작 규제는 더 낮은 선형경로에 맞춘 것이다.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로는 정부가 고를 수 있는 높은 목표가 되고, 산업에 직접 적용되는 규제는 낮은 책임에 고정됐다.
감축이 늦어지는 동안 위험의 총량은 커지고, 그 피해는 소득과 주거조건, 노동환경, 건강상태, 거주지역과 연령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국회는 선형 경로가 국제적 책임 몫에 부합하는지, 누적배출을 충분히 제한하는지, 현재와 미래의 국민을 과소보호하지 않는 최소선이 되는지를 엄격히 검토하고 설명했어야 한다.
공개된 보도자료에서는 그와 같은 기본권 보호의 충분성에 대한 심사를 확인할 수 없다. 산업의 감축수단과 이행 여건은 구체적인 고려 요소로 제시되었지만, 왜 이 하한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인지에 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3. 산업의 부담과 국민의 권리,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판단의 순서는 분명해야 한다. 먼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감축의 최소선을 정하고, 그 기준선 안에서 산업이 전환하도록 지원을 설계해야 한다. 산업이 지금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호의 수준을 먼저 낮추고, 앞으로의 기술과 이행에 기대어 부족함을 메우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헌재 결정은 산업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부족해서 내려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불충분한 감축정책으로 국민의 환경권이 침해됐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다. 그런데 이번 후속 입법에서는 산업계 지원이 목표 조항과 나란히 들어갔고, 위원장 역시 산업계 지원과 예측 가능성, 법적 안정성을 주요 성과로 앞세웠다.
산업의 부담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국회는 그만큼 엄격하게 기본권 보호의 충분성을 심사하고 답했어야 한다.
이 목표와 경로로 국민의 기본권은 충분히 보호되는가.
이 하한으로 인해 늘어날 위험은 누가 감당하는가.
산업의 현재 부담을 줄인 대가가 더 큰 감축 책임과 회복하기 어려운 위험으로 미래에 이전되지는 않는가.
이 질문과 검토 없이 정한 하한은 현실적인 타협이 아니다. 기본권 보호에 필요한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넘긴 결정이다.
3. 공론화의 결과도 외면했다.
국회는 이번 개정을 위해 공식적으로 시민대표단을 구성해 공론화를 진행했다. 국회가 직접 설계하고 권한을 부여한 공적 숙의 절차에서 시민들이 위험과 책임의 배분에 관해 내린 판단이다. 시민대표단은 관련 정보와 서로 다른 입장을 검토하고 숙의한 끝에, 77.9%가 지금부터 더 빠르게 감축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시민대표단은 감축을 뒤로 미루는 것이 당장의 부담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더 큰 위험과 책임을 미래로 넘기는 선택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 판단을 국가가 지켜야 할 기준으로 만들지 않았다. 더 빠른 경로와 더 낮은 경로를 하나의 범위 안에 함께 두고, 실제 산업 규제에는 낮은 선형경로를 적용하도록 했다.
국회가 시민대표단의 결론을 반드시 그대로 입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가 스스로 마련한 숙의 절차에서 확인된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리려면, 왜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다른 선택이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더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시민들의 판단을 듣고도 아무런 해명 없이 반대 방향의 제도를 만들 수 있다면, 공론화는 시민에게 판단을 요청하는 절차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에 정당성을 더하는 장치로 전락한다.
기본권 보호의 최소선은 애초에 정부나 시민 다수가 선호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시민대표단이 더 낮은 감축경로를 선택했더라도, 국회는 그 경로가 국민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지 별도로 심사했어야 한다. 그런데 시민대표단조차 더 빠른 감축을 선택했음에도 국회가 낮은 경로를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법적 하한으로 남겼다.
4. 국회는 법적 공백만이 아니라, 기본권 보호의 공백을 해소하라.
소위원회 의결안은 기후특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의 심사를 남겨두고 있다. 국회는 남은 과정에서 다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1.5℃ 목표와 대한민국의 공정한 국제적 책임에 부합하는 감축경로를,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정해야한다.
둘째, 실제 산업 규제를 낮은 선형경로에 고정하는 조항을 재검토하라. 규제의 기준은 산업이 가장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셋째, 각 목표와 경로가 과소보호금지 원칙, 미래 부담 이전 금지, 국제적 책임 몫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근거와 심사 과정을 공개해야한다.
넷째, 산업계 지원을 넘어, 기후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주거, 노동, 건강과 생계를 지키기 위한 국가의 구체적 책임과 이행 장치를 법률에 담아야한다.
법률에 ‘국제적 몫’과 ‘미래세대 부담 금지’라는 문구를 넣는 것만으로는 헌법적 의무를 이행했다고 할 수 없다. 그 원칙이 실제 목표와 감축경로를 어떻게 제한했는지 입증해야 한다.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헌법재판소의 언어를 덧붙이는 것은 기본권 심사가 아니다. 국회는 헌재 결정의 형식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라는 그 본질에 답해야 한다.
2026.07.23
청소년기후행동
*용어 설명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 :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구체적으로 심사하는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다. 이번 의결은 최종 법률 확정이 아니며,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
탄소중립기본법: 정식 명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기후위기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의 기본 틀을 정하는 법률이다.
선형감축경로 : 현재부터 2050년 탄소중립 시점까지 일정한 속도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경로를 말한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중장기 감축목표의 하한을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됐다.
1.5℃ 감축경로 :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필요한 감축경로를 말한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중장기 감축목표 범위의 상한으로 제시됐다.
개정안 주요 내용 : 국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개정안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중장기 감축목표를 상·하한의 범위로 법률에 규정하고, 구체적인 수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2035년: 2018년 대비 53~61% 감축
2040년: 69% 이상~80% 수준 감축
2045년: 84% 이상~90% 수준 감축
하한: 2050년까지 일정한 속도로 감축하는 선형감축경로
상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감축경로
배출권거래제 등 규제에는 하한 적용
긴 시간 끝에 지난 7월 22일, 국회가 기후 헌법소원 결정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답은 또 기본권 보호를 모호하게 미루기.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기 감축 목표와 경로를 만들라고 명령한 것에 대해서 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하나의 분명한 기준이 아니라 ‘범위‘로 정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가장 낮은 목표를 선택하고도 법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회는 남은 심사 과정에서 1.5℃ 목표와 국제적 책임에 부합하는 감축경로를 분명한 최소 기준으로 정하고, 그 근거와 심사 과정을 공개해야 합니다. 법적 공백만 채울 것이 아니라, 기본권 보호의 공백을 해소해야 합니다.
아래 이 결정에 대한 성명서를 공유합니다.
본문 맨 아래에 관련한 용어 설명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명서]
‘범위’로 가린 기본권 보호의 공백, 국회는 책임 있는 감축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라
-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기후특위 법안심사 소위 의결에 대한 성명문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는 7월 22일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정한 개정 기한(2026년 2월 28일)을 다섯 달 가까이 넘긴 뒤였다.
개정안은 2035년, 2040년, 2045년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한과 하한의 범위로 법률에 규정하고, 구체적 수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아울러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대한민국이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하고,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법에 명시했다.
1. 형식은 채웠지만, 보호의 기준은 다시 비웠다
형식적으로 보면 헌재 결정이 요구한 것이 모두 담긴 것처럼 보인다. 장기 감축목표를 법률에 규정했고, 국제적 책임과 미래세대 부담 이전 금지도 법문에 들어갔다. 국회가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헌재 결정의 핵심은 2031년 이후의 감축경로를 규정하지 않은 결과 국민의 기본권이 충분히 보호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위헌의 이유는 감축경로의 '공백'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저버릴 만큼 국민을 위험에 방치했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후속 입법은 감축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수준과 구조를 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감축목표를 하나의 분명한 기준이 아니라 범위로 설정하면서, 무엇이 충분한 보호인지에 대한 판단을 다시 열어두었다. 국가는 앞으로 가장 낮은 목표를 선택하고도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법적 공백은 채웠지만,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보호의 기준은 다시 비워둔 것이다.
국가의 기후 목표는 사회가 위험을 어디까지 줄이고 어떤 방향과 속도로 전환할지를 정하는 기준이다. 그 기준이 있어야 지금의 정책이 충분한지 부족한지 평가할 수 있다. 목표를 범위로 두고 낮은 쪽을 합법적인 선택으로 남겨두면, 실패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후퇴를 제도로 만들게 된다.
2. 1.5℃ 경로는 골라도 되는 상한이 아니라, 지켜야 할 기준이다.
개정안은 하한을 2050년 탄소중립까지 일정한 속도로 줄이는 선형감축경로로, 상한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경로로 설명한다. 그런데 배출권 거래제처럼 실제로 산업을 움직이는 규제에는 하한을 적용하도록 했다.
여기에 분명한 모순이 있다. 법에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말라는 원칙을 적어놓고, 정작 규제는 더 낮은 선형경로에 맞춘 것이다.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로는 정부가 고를 수 있는 높은 목표가 되고, 산업에 직접 적용되는 규제는 낮은 책임에 고정됐다.
감축이 늦어지는 동안 위험의 총량은 커지고, 그 피해는 소득과 주거조건, 노동환경, 건강상태, 거주지역과 연령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국회는 선형 경로가 국제적 책임 몫에 부합하는지, 누적배출을 충분히 제한하는지, 현재와 미래의 국민을 과소보호하지 않는 최소선이 되는지를 엄격히 검토하고 설명했어야 한다.
공개된 보도자료에서는 그와 같은 기본권 보호의 충분성에 대한 심사를 확인할 수 없다. 산업의 감축수단과 이행 여건은 구체적인 고려 요소로 제시되었지만, 왜 이 하한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인지에 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3. 산업의 부담과 국민의 권리,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판단의 순서는 분명해야 한다. 먼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감축의 최소선을 정하고, 그 기준선 안에서 산업이 전환하도록 지원을 설계해야 한다. 산업이 지금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호의 수준을 먼저 낮추고, 앞으로의 기술과 이행에 기대어 부족함을 메우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헌재 결정은 산업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부족해서 내려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불충분한 감축정책으로 국민의 환경권이 침해됐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다. 그런데 이번 후속 입법에서는 산업계 지원이 목표 조항과 나란히 들어갔고, 위원장 역시 산업계 지원과 예측 가능성, 법적 안정성을 주요 성과로 앞세웠다.
산업의 부담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국회는 그만큼 엄격하게 기본권 보호의 충분성을 심사하고 답했어야 한다.
이 목표와 경로로 국민의 기본권은 충분히 보호되는가.
이 하한으로 인해 늘어날 위험은 누가 감당하는가.
산업의 현재 부담을 줄인 대가가 더 큰 감축 책임과 회복하기 어려운 위험으로 미래에 이전되지는 않는가.
이 질문과 검토 없이 정한 하한은 현실적인 타협이 아니다. 기본권 보호에 필요한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넘긴 결정이다.
3. 공론화의 결과도 외면했다.
국회는 이번 개정을 위해 공식적으로 시민대표단을 구성해 공론화를 진행했다. 국회가 직접 설계하고 권한을 부여한 공적 숙의 절차에서 시민들이 위험과 책임의 배분에 관해 내린 판단이다. 시민대표단은 관련 정보와 서로 다른 입장을 검토하고 숙의한 끝에, 77.9%가 지금부터 더 빠르게 감축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시민대표단은 감축을 뒤로 미루는 것이 당장의 부담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더 큰 위험과 책임을 미래로 넘기는 선택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 판단을 국가가 지켜야 할 기준으로 만들지 않았다. 더 빠른 경로와 더 낮은 경로를 하나의 범위 안에 함께 두고, 실제 산업 규제에는 낮은 선형경로를 적용하도록 했다.
국회가 시민대표단의 결론을 반드시 그대로 입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가 스스로 마련한 숙의 절차에서 확인된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리려면, 왜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다른 선택이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더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시민들의 판단을 듣고도 아무런 해명 없이 반대 방향의 제도를 만들 수 있다면, 공론화는 시민에게 판단을 요청하는 절차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에 정당성을 더하는 장치로 전락한다.
기본권 보호의 최소선은 애초에 정부나 시민 다수가 선호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시민대표단이 더 낮은 감축경로를 선택했더라도, 국회는 그 경로가 국민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지 별도로 심사했어야 한다. 그런데 시민대표단조차 더 빠른 감축을 선택했음에도 국회가 낮은 경로를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법적 하한으로 남겼다.
4. 국회는 법적 공백만이 아니라, 기본권 보호의 공백을 해소하라.
소위원회 의결안은 기후특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의 심사를 남겨두고 있다. 국회는 남은 과정에서 다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1.5℃ 목표와 대한민국의 공정한 국제적 책임에 부합하는 감축경로를,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정해야한다.
둘째, 실제 산업 규제를 낮은 선형경로에 고정하는 조항을 재검토하라. 규제의 기준은 산업이 가장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셋째, 각 목표와 경로가 과소보호금지 원칙, 미래 부담 이전 금지, 국제적 책임 몫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근거와 심사 과정을 공개해야한다.
넷째, 산업계 지원을 넘어, 기후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주거, 노동, 건강과 생계를 지키기 위한 국가의 구체적 책임과 이행 장치를 법률에 담아야한다.
법률에 ‘국제적 몫’과 ‘미래세대 부담 금지’라는 문구를 넣는 것만으로는 헌법적 의무를 이행했다고 할 수 없다. 그 원칙이 실제 목표와 감축경로를 어떻게 제한했는지 입증해야 한다.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헌법재판소의 언어를 덧붙이는 것은 기본권 심사가 아니다. 국회는 헌재 결정의 형식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라는 그 본질에 답해야 한다.
2026.07.23
청소년기후행동
*용어 설명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탄소중립기본법심사소위원회 :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구체적으로 심사하는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다. 이번 의결은 최종 법률 확정이 아니며,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
탄소중립기본법: 정식 명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기후위기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의 기본 틀을 정하는 법률이다.
선형감축경로 : 현재부터 2050년 탄소중립 시점까지 일정한 속도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경로를 말한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중장기 감축목표의 하한을 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됐다.
1.5℃ 감축경로 :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필요한 감축경로를 말한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중장기 감축목표 범위의 상한으로 제시됐다.
개정안 주요 내용 : 국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개정안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중장기 감축목표를 상·하한의 범위로 법률에 규정하고, 구체적인 수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2035년: 2018년 대비 53~61% 감축
2040년: 69% 이상~80% 수준 감축
2045년: 84% 이상~90% 수준 감축
하한: 2050년까지 일정한 속도로 감축하는 선형감축경로
상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감축경로
배출권거래제 등 규제에는 하한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