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자료][2024-05-21] 기후 헌법소원 최후진술문 - 청소년기후소송 원고 김서경

2024-06-03

안녕하세요. 저는 2020헌마389 사건 청소년기후소송의 원고인 김서경입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적합한 말이 무엇일지 생각했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자리인지 고민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에서, 그리고 이 소송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재한 활동가이자 당사자이긴 하지만 그것이 기후위기의 모든 당사자를 대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시민과 청소년, 어린이를 구분하여 청소년 정체성을 부각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단지 청소년이기에, 미래세대라는 정체성으로 이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후위기를 인지한 후 스스로를 당사자라 정의했고 개인적인 실천 이상의 변화가 기후대응을 가능케 할 것이라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단체에서 함께 기후대응을 요구했고 그 대상은 대부분 정부나, 국회, 기업과 같은 사회의 거대한 권력집단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과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이라 정의했습니다. 얼만큼 줄였는지의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수치가 기후위기의 위험수준을 낮출 만큼 충분한지가 중요했습니다. 기후위기를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제사회의 약속이라던가 트렌드라서가 아니라 우리 삶을 무너트릴 만큼의 거대한 재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냥 위기를 좀 아는 것 정도로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는 "심각한 건 알지만 대응하긴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정확히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텀블러를 쓰고 비닐봉투 사용을 규제할 수는 있어도 온실가스를 줄이고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뭘 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기후위기 앞에서 안전할 수 있는 대응책을 달라고 요구해도 돌아오는 답은 "기특한 청소년"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외침은 아이들의 투정이나 동정심, 연민 정도로만 받아들여질 뿐 동등한 주체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기후행동을 하며 고민한 끝에 헌법소원을 선택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속도에 맞춰 가장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지 요구하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정책결정자들의 자발성만을 믿고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2020년 헌법소원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후로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해에는 국회에 요구했습니다. 1.5도 이내로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막고 기후위기 안에서 안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행동을 바랐습니다. 이에 정말 많은 국회의원이 응답하였고 국회는 기후비상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제정된 탄소중립 기본법은 기후대응을 목적으로 함에도 1.5도를 지키지 못하는 법이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고 탄소중립 로드맵 설계를 위한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기후위기를 오랫동안 이야기해왔던 우리에게도 탄소중립위원회의 논의테이블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단지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자리로만 바라보기에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너무 중요했습니다. 직접적인 의사결정구조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도 처음이었기에 우리 삶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청소년은 장식이었습니다.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여 만들었다는 명분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지 실제로 석탄투자를 줄이고 온실가스 감축을 얼마나 하고 당사자의 삶을 어떻게 대변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서는 안 됐던 것입니다. 청소년은 학교 결석한 이야기나 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우리가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래도 이번 만큼은.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고 이번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청소년이 참여했다는 명분만으로 이용당하는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청소년기후행동은 탄소중립위원회를 사퇴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논의테이블을 제안하기도 했고 정치안에서 기후위기가 다뤄질 수 있게 캠페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매해마다 헌재 앞에 출석도장을 찍었습니다. 활동을 할수록 할 수 있는 것이 줄어갔습니다. 시위를 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의견을 전달하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당장의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기후위기는 어느덧 가시화된 문제로 우리의 일상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폭우로 피해를 입는 것과 기후재난은 다릅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년, 수차례에 걸쳐 더 강도높은 재해로 찾아옵니다. 내가 약자라서,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기후위기라는 게 평범한 모든 사람을 약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가 정부와 정책결정자들에게 기후대응을 요구해왔던 이유는 이건 더 이상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재난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국가 기후위기 대응의 기준점이 되는 법은 우리 삶의 최저선을 결정합니다. 앞으로의 기후대응에 있어 최소한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며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당사자라 부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헌법소원은 우리가 던지는 마지막 믿음입니다. 


우리의 자리를 내어준 이 판단을 마지막으로 믿어보고 싶습니다.


2024.05.21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변론

원고 최후 진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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