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의견서 예시 보기]'현수'님의 글은 헌법재판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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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서울에 사는 20대 직장인입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와 산지도 벌써 4년 째입니다. 다른 청년들과 비슷하게,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 서울로 왔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살 집을 찾아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며칠을 돌아다녀도 마땅한 집이 없었습니다. 결로로 벽지가 축축하게 젖어 쭈글거리던 집, 기름으로 바닥이 끈적거리고 햇빛이 들지않아 캄캄했던 집, 사이사이 곰팡이가 피어있고, 침대 하나면 가득차 책상 하나 놓지 못할 것 같은 집. 그러다 한 집을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동네에 있었습니다. 동네 골목길을 쭉 따라들어가며 이 집일까 저 집일까 고민을 했습니다. 멈춰선 곳은 동네에서 가장 낡아보이는 빌라였습니다. 주춤거리다 들어가서 본 집은 작지만 다용도실도 있었고, 크진 않지만 적당한 창문으로 해도 들어왔습니다. 집 바로 앞에는 산책하기 좋은 하천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저께 저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습니다. 집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습니다. 비는 아직 오지 않았고 하천은 평소와 같았습니다. 씻고 나와 출근 준비를 하는데 재난문자로 핸드폰이 시끄러웠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다리 앞에 모여있었습니다. 편의점 아저씨, 맨날 세탁소 앞 평상에 앉아계시는 할머니, 동네를 오다니며 인사하는 사람들이 다리 밑을 바라보며 걱정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보행로까지 삼켜버린 하천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천에 출입하지 말라는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여전히 비는 쏟아지고 있었고 뿌옇고 컴컴한 흙탕물이 파도치고 있었습니다. 불어난 하천의 회오리를 보다보니 어지러워졌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다리와 저 어두운 물이 너무 가까워서, 저 물이 이 다리를 넘어서 우리 집까지 흘러들어오진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걱정을 뒤로하고, 버스의 도착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재난문자는 멈출 줄 모르고 휴대폰 맨 위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은 우리 동네. 제가 동네를 돌아다니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꼭 말을 거십니다. 동네에 젊은 사람이 몇 없어서 그런지, 핸드폰을 내밀고는 사용법을 묻곤 하십니다. 지도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렇게 카톡을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건지…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재난 문자는 제대로 보실 수 있으실까.’, ‘대피해야 할 때, 제때 대피하실 수 있으실까.’ 이런 고민을 하며 버스에 앉아 일기예보를 훑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우리 집 근처에서 산사태가 나서 빌라를 덮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빌라는 우리 집과 너무 닮아있었고, 저는 비가 많이 오면 걱정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빗소리의 낭만 같은 건,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안전할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다행히 그날 저녁 비는 그쳤고, 하천의 수위는 내려갔고, 흙탕물이 우리 집까지 흘러들어올 일은 없었습니다. 이 집을 골랐던 이유 중 하나였던 하천이, 이렇게나 두려움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나빠지기만 할 뿐, 나아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앞으로 여름에는 비가 더 많이 오고, 더 더워지기만 할 뿐,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무섭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겁이 나는 것은, 이 위기를 개인이 알아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우리 동네에서 동네 사람들과 걱정없이 안전하게 여름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한 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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