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외침,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기후행동(청기행)은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청소년,청년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드는 기후 운동 단체입니다. 한국의 청소년,청년들이 주도하여 기후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1.5도 이내로 지구 평균 온도상승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정치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당사자 기후 운동 조직으로서 청소년기후행동은 청(소)년 세대의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과 목소리들을 반영하여 정부가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선택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드는 청소년 기후 운동 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은 2018년 8월 기후위기를 인식한 청소년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하여 2019년 3월 전세계 청소년들의 기후 운동 연대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ue)와 함께 결석시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기후 대응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19년 3,5,9,11월과 2020년 9월 글로벌 기후 운동의 흐름과 연대하여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열고, 2020년 3월에는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대응이 청소년의 생존권, 환경권, 인간답게 살 권리,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요지의 기후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강화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정부가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이에 1.5도 온도상승 제한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합니다. 청소년 당사자가 기후문제의 해결의 주체로 나타나 자신의 목소리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직접적인 변화를 촉구할 수 있도록 청소년 당사자 목소리를 모으고 확산합니다. 기후위기로 더욱 심각해 질 사회 전반의 불평등에 주목합니다. 기후위기로 무너질 삶과 권리가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직접적인 행동을 이끕니다.


 단지 환경의 관심이 많아서, 생태감수성이 높아서가 아닌 앞으로의 살아갈 오랜 시간을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붕괴, 기후 재난이 일상화된 미래에서 그 피해와 책임을 견디며 살아가야하는 '당사자'이기에 우리는 행동합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당연한 일상, 마땅히 상상 가능한 안전한 미래가 존재하는 건 '권리'로 지켜져야하는 것이기에, 기후위기의 피해와 영향을 겪으며 또 무너지는 일상의 모든 불평등을 마주하며 살아가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는 행동합니다. 

[청기행 첫번째 총회에서]



다른 세상은 가능합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마주한 청소년입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지구 온도 때문에 불타는 숲, 물로 잠긴 마을, 하얗게 죽어가는 구상나무, 멈추지 않는 장마를 바라보다, 행동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기후위기는 유예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실입니다. 다양한 자연재해와 이상기후로 고통 받는 이들은 하루하루 늘어가고, 원래부터 존재하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지구상 모든 인류를 위협하지만, 청소년인 우리에게는 더욱 치명적입니다. 화석 연료에 의존해 번영을 누린 것은 이전 세대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세대로 대물림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은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책결정권자의 자리에 오른 시점에는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을 것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어지고 온갖 불확실한 위기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합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의 대응은 너무나 소극적입니다.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해외에서 발전소 사업을 벌이고, 국민의 세금을 거기에 쏟아붓는 등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라면 결코 내리지 말아야 했을 결정들이 닫힌 방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결정에 우리는 정작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은 부당합니다.


나이주의가 짙게 밴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비정치적인 존재가 될 것을 요구 받습니다.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었으나 여전히 대다수 청소년은 정치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현행법은 청소년의 정당가입·선거운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많은 학교에서 학생의 정치적 활동과 집회 참여를 징계하는 교칙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목소리 높이며 거리로 나온 우리는 ‘학생답지 못하다’거나 ‘공부가 우선’이라는 말에 부딪히기 일쑤입니다.


한편,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상반된 반응이 따라붙습니다. 바로, ‘기특한 아이들’ ‘어른들이 미안하다’ ‘공부해야 할 학생들조차 거리로 나왔다’는 식의 보호주의적인 시선입니다. 이는 청소년을 함께 나아가야 할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고, 대상으로서 호명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와 같은 지향점과 목표를 가진 시민사회 내부에서조차 청소년을 운동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일정 부분 존재합니다. 우리는 사회가 정한 청소년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 방향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이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기후 운동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과학자나 정치인이 된 후에 비로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대신, 지금 여기서 변화를 만들 것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우리들은 다른 세상을 위해 틀을 깨고 대담한 전환을 그리며 나아가려고 합니다.